지난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2 한국경제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 경제 상황을 제3자가 어떻게 분석·평가하는 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보고서는 단순 평가만이 아닌 정책적 권고사항을 포함한다. 언론을 통해 소개됐듯 OECD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도 지적했다. 세계 경기침체에 대비한 재정확대, 확장 통화정책 등 다양한 권고도 담았다. 우리 정부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내용들이다.
눈여겨 볼 부분은 과다한 전기소비 행태를 지적한 대목이다. OECD는 높은 수준의 전기소비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전기생산 비용에 맞춰 전기가격을 조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의 낮은 전기요금이 에너지 과다소비를 조장할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는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했다. 근거로 2007년 기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단위당 전기 소비량은 OECD 평균보다 1.7배나 높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산업용·주택용 전기 모두 매우 싼 편이다. 영국은 우리보다 산업용은 2.1배, 주택용은 2.4배가 비싸다. 일본은 산업용 2.7배, 주택용 2.8배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우리에 비해 산업용이 4.4배, 주택용이 3.2배나 높다.
전기요금은 산업 원가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비싸서 좋을 일은 없다. 하지만 전기 생산원가보다 요금이 싼 지금의 구조는 분명 모순이다. 생산원가를 건지기는커녕 팔면 팔수록 손실이 더 커지는 현구조는 정상이 아니다. 화석연료를 태워 생산한 전기가 화석연료보다 싸니 국민은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게 이득인 이상한 구조다. 그래서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것은 생수로 빨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유까지 나왔다.
어릴 적 창문하나 없는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모여 살았다. 삼복더위에 온 식구는 선풍기 한 대에 의존했다. 그래도 참을만했다. 30여년이 지나며 형편은 나아져 거실 한켠에는 버튼만 누르면 북극 한풍이 몰아치는 성능 좋은 에어컨이 놓였다. 방마다 선풍기도 있지만 아이들은 방에도 에어컨을 놓아달라고 아우성이다. 과거의 참을성은 온데간데없다. 전기값과 물값이 유난히 싼 지금 환경에선 아이들에게 아껴 써야 할 이유를 설명해봐야 소 귀에 경 읽기다.
싼 가격이 전기사용을 부추기는 꼴이어서 전기수요는 늘 공급한계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다. 한 해에 몇 차례나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다. 하계피크를 뛰어넘는 동계피크도 2009년 이후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처음 경험한 순환정전 피해는 이제 언제라도 재발 가능한 치명적 위험으로 다가왔다.
연간 전력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4.8%로, 2010년 10.1%보다는 크게 둔화됐다. 그러나 연간 경제성장율(3.6%)보다는 여전히 높다. 지난해 증가율이 감소한 원인도 바람직하지 않다. 자발적 절약이 아닌 평년보다 높았던 겨울철 기온 탓에 난방수요가 감소한 것이어서 불안감은 상존한다. 우리나라 인구 한 명당 전기소비량은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높은 프랑스, 영국, 일본보다 많다. 생산이 아닌 곳에 전기가 과다하게 쓰이는 비효율적 소비구조도 문제다.
물가를 잡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다는 논리는 언 발에 오줌누기와 같다. 전기요금을 합당한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최소화하려면 주택용보다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전력 스스로도 원가 상승요인을 흡수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 국민적 신뢰를 얻어야 하는 건 당연지사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