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84>사육(飼育)과 교육(敎育)

초중고 12년을 치열하게 준비해서 S대학에 입학한다. S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딴생각과 딴짓을 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공부만 해야 된다. 아침부터 밤늦도록 교과서와 참고서를 읽고 학원 강의를 들어가면서 대학 입학에 필요한 점수 따기 방법을 익히고 짜인 각본에 따라 정해진 논리를 펴는 논술고사 준비를 쉬지 않고 해야 된다.

몸은 가급적 많이 움직이지 않고 머리를 많이 써야 된다. 하지만 몸을 쓰지 않고 머리만 쓰면 머리는 돌아가지 않는다. 몸을 움직여줘야 열이 났던 머리가 식으면서 생각이 말끔하게 정리된다. 한참 몸을 움직여 신체 발달을 촉진해야 할 청춘 시절에 몸을 쓰지 않고 머리만 쓰면 신체는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심각한 두통과 정신이상 증후군이 나타나기도 한다.

교육의 본질은 자기 몸을 움직여 체험적 깨달음을 스스로 체득(體得)하는 과정이다. 몸이 따르지 않는 머리만의 공부는 관념적 파편을 야적하는 것과 다름없다. 몸을 움직여 부딪히고 넘어져봐야 생각이나 느낌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있다. 사육된 닭이 낳은 달걀을 깨서 노른자위를 슬쩍 눌러보면 아무 힘도 없이 금방 터져버린다. 그런데 밭에서 뛰어놀며 큰 닭이 낳은 달걀을 깨서 눌러보면 쑤욱 들어갔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그만큼 외부의 시련과 역경에 견딜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뛰어놀지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머리만 쓰게 만드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이다. 사육된 아이는 외부의 시련과 역경을 견딜 내공이 없다. 온실 속의 화초가 비닐을 벗겨내면 얼어 죽듯이 온실 속에서 사육된 아이는 외부의 보호 장막을 걷어내면 작은 어려움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나약한 사람밖에 되지 못한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파란만장과 절치부심의 체험이 비약적 성장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교육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아이를 사육하고 있나. 당신은 사육된 사람인가. 아니면 교육받은 사람인가. 체험적 깨달음을 얻는 교육을 하고 있나. 사육된 사람은 자신의 아이도 사육시킬 가능성이 높다. 교육받은 사람은 힘들고 어렵지만 자신의 아이도 교육을 통해 올바른 길로 안내할 것이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