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행 열흘 ‘단말자급제’ 계륵되려나

지난 1일 단말자급제(블랙리스트제도)가 시행됐지만 유명무실한 상태다. 혼탁한 이동통신 유통시장을 다소나마 투명하게 하고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 도입한 제도지만 아직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단말자급제용 요금제는 다음 달에나 나온다고 한다. 단말자급제용 휴대폰 역시 가전매장이나 대형마트에서 구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단말자급제 시행 이후 이동통신 대리점이나 대형마트 등을 찾은 소비자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유다.

시행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제도의 성패를 가리는 것은 성급하지만, 제도 시행에 따른 이동통신사나 단말 제조업계의 준비는 낙제 수준에 가깝다. 핵심 역할을 할 이동통신사와 단말 제조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제도는 지속하기 힘들다. 단말자급제가 이동통신사나 제조사에 도움이 되는 제도라면 업체가 앞장서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진행했을 테다.

지금으로서는 이동통신사, 단말 제조업체, 소비자 모두 좋을 게 없다. 장롱폰이나 중고폰, 빈 단말을 통신사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엔 특별히 나아진 게 없다.

단말자급제가 실시되면 저가폰 시장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고기능폰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보급형폰을 얼마나 구매할지는 미지수다.

휴대폰 제조사들도 단말자급제용 스마트폰 출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보급형 단말을 먼저 출시한다고 하지만 고기능폰 출시는 미뤄놓은 상태다. 팬택·LG 등은 출시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기존 유통구조상 휴대폰 제조사는 이동통신사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소비자 권익을 생각해서 만든 제도지만 작동이 안 되는 형국이다. 정부는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해서 제도를 활성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