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두들겨 맞은 당신, 오래 살긴 글렀다?

[사이언스 인 컬처]어릴 때 폭력 겪으면 오래 못산다

어린 시절에 폭력을 자주 겪으면 일찍 늙거나 병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듀크대 연구진은 1994년에서 1995년에 태어난 236명의 쌍둥이 아이를 대상으로 폭력과 DNA손상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각종 폭력에 노출된 사례가 많을수록 텔로미어 손상 정도가 심했다.

연구진은 지금 18세가 된 이들의 DNA 샘플을 채취해 5세와 10세 당시의 DNA 샘플과 비교했다. 이들 중 여아 비율은 49%이고 한 번 이상 폭력에 노출된 아이도 42%를 넘었다. 또 어머니를 대상으로 집중 인터뷰를 실시해 가정에서 어머니가 손찌검을 하지 않았는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지 않았는지, 어른들이 신체적인 가혹 행위를 한 적은 없는지 등 어린 시절의 폭력 경험 여부를 알아냈다.

결과를 종합하자 2회 이상 폭력에 노출돼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들의 텔로미어가 크게 손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텔로미어는 DNA 말단부에 위치한 물질로 길게 꼬인 유전체가 풀리는 것을 막아준다. 구두끈이 해어지지 않도록 끝부분에 플라스틱 막대로 씌운 것과 비슷하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길이가 짧아진다. 텔로미어가 손상되면 세포가 분열할 수 있는 횟수가 그만큼 줄어들어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과 사망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구를 주도한 샬레프 연구원은 듀크대 발표자료를 통해 “어린 아이라도 스트레스를 겪으면 텔로미어가 짧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최초의 연구”라고 설명했다. 논문의 공저자로 참여한 카스피 교수는 “유전체학의 발달 덕분에 스트레스가 사람의 유전자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어린 시절에 겪은 스트레스가 인체의 기본적인 세포 차원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강조했다.

실제 연령은 시간을 이용해 측정하지만, 신체 나이는 텔로미어가 말해준다는 의견이 많다.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든 채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