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고스피어]그 많던 업체는 다 어디 갔을까](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5/14/281942_20120514160220_389_0001.jpg)
아날로그 시절 제품은 하나의 기기에 한 가지 기능뿐이었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온 제품은 여러 가지 기능이 통합됐다. 제품은 휴대폰 모습으로 손바닥 위에 올라섰고, 여러 기능은 프로그램이 돼 버렸다. 꽤나 긴 아날로그 시대를 제외하면 디지털로 넘어 온 이후의 시간은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더 이상 우리는 MP3플레이어나 PMP를 놓고 어떤 제품을 구매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어떤 앱으로 음악을 듣고 영상을 볼지 고민한다. MP3플레이어, PMP, 내비게이션 제조사들은 점점 어려워졌다.
최근 청천벽력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한때 PMP 시장을 주도한 아이스테이션이 코스닥에서 상장폐지 수순을 밟고 결국 애프터서비스(AS) 중단을 알린 것. 최근 2년 연속 자기자본의 50%가 넘는 손실을 기록하며 영업손실과 자본잠식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런 부침은 아이스테이션만의 상황이 아니다. 아이리버는 2012년 1분기 기준으로 13분기 만에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코원은 2011년 사상 첫 적자를 기록했다. 이들 두 회사는 그동안 블랙박스나 전자책, 관련 액세서리 사업으로 제품 다변화를 시도했기에 그나마 좀 나은 상황이다.
한때 이 시장이 정말 괜찮던 시절, 나는 한 달에 십 수개의 MP3플레이어, PMP, 내비게이션 리뷰를 써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리뷰를 의뢰하던 업체는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이 질문에 대해 (누구나 그랬겠지만) 제품이라면 스마트폰에서 구현할 수 없는 것을 만들거나, 생태계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제품이 전부였으니까.
이제 제품만 만드는 것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제품은 인간과 소통하는 유기체와 비슷해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제품과 인간이 함께 살아 숨쉴 수 있는 생태계까지 만들어줘야 하는 시대다. 이미 거대한 두 개의 생태계가 존재하지만, 이 생태계를 창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구글과 애플도 그랬을 테니 MP3플레이어, PMP, 내비게이션을 만들던 작은 규모 회사에는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생태계 조성은 정부가 나서서 해주면 어떨까. 지금처럼 스타트업 회사(대부분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주변부의 사업영역)나 청년 창업자에게 사무실이나 지원금을 주는 것도 좋지만, 이미 있는 회사의 어려운 환경과 현실 개선 역시 정부 몫일 것이다. 날이 갈수록 산업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제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그것을 실행시킬 기기가 없으면 모두 허상일 수밖에 없으니까.
고진우 블로그 `뽐뿌인사이드(bikblog.egloos.com)` 운영 maryj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