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연-진대제 특별대담] "과학기술이 미래를 여는 열쇠"

대담자: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진대제 카이스트 석좌교수(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

“우리는 무엇으로 글로벌 사회, 고령화 사회, 융합의 시대, 통일의 시대를 준비해야 할까요. 바로 과학기술입니다. 과학기술이 미래를 여는 열쇠입니다.” 국가연구개발(R&D)예산을 배분·조정하고 국가 과학기술 로드맵을 그리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 김도연 위원장은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 대표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서울 도곡동 카이스트 디지털미디어연구소에서 만난 두 사람은 대한민국이 앞으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도구가 과학기술이라는 데 공감했다.

선진국을 추격해 온 한국은 글로벌 시대를 선도해야 하는 변화의 시점에 있다. 지난 40년간 급성장한 배경에는 과학기술이 있었다. 과학기술은 동시에 앞으로 40년을 이끌어갈 성장 동력이다. 두 사람은 과학기술 한국의 과거를 돌아보고 국과위 역할과 출연연 구조개편 문제 등 당면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진대제 KAIST 석좌교수= 지난 40년 동안 한국은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김도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그렇다. 40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몇 가지 주목할 일들이 있다. 1970년 4월 1일에 포항종합제철회사가 기공식을 가졌다. 1973년 6월에 첫 쇳물이 나왔다. 지금 포스코는 세계에서도 주목받는 철강회사다. 제 판단으로는 앞으로 20~30년간 포스코를 ?아올 회사가 없을 것이다. 불과 40년 만에 이뤄낸 값진 성과다. 고 박태준 회장을 개인적으로 존경한다. 큰 회사를 세우고 또 회사의 이익을 가지고 포스텍이란 대학을 세웠다. 이공계 대학인데 앞으로 한국을 이끌 것은 엔지니어라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진대제 = 어려웠던 시기에 산업경제를 이끈 현대중공업도 대표적인 기업이다.

◇김도연= 물론이다. 지금 울산의 수출액은 대한민국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수출의 큰 축이 현대중공업이다. 지난 1972년 3월에 기공식이 있었다. 배 수주를 받으면서 또 조선소를 만들어가며 배를 만들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 이를 해냈고 지금은 세계적 회사로 성장했다. 선박도 있지만 디젤발전기 등을 수출한다. 디젤발전기가 너무 좋아 쿠바 지폐에 우리가 수출한 발전기 사진을 넣을 정도라고 한다.

현대중공업에는 크레인이 있는데 크레인은 스웨덴 말뫼조선소에서 사 온 것이다. 말뫼조선소가 망하면서 현대중공업이 단돈 1달러에 크레인을 팔았다. 크레인이 말뫼조선소를 떠날 때 현지 주민들이 울었다고 한다.

◇진대제= 과연 우리는 크레인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기술적으로 앞서 다른 산업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다면 웃으면서 크레인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기술 뒷받침하는 산업 경쟁력은 정말 무섭다.

◇김도연= 문화 분야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지난 1969면 10월 클리프리차드가 내한공연을 했는데 이때 한국 여학생들이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한마디로 이 공연이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를 두고 신문에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소녀그룹 `소녀시대`가 파리에서 공연을 했다.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냈고 현지 언론의 극찬도 이어졌다.

◇진대제= 재미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변화는 수치에도 반영됐으리라 생각된다.

◇김도연= 물론이다. 개인소득으로 보자면 지난 40년 동안 무려 100배가 성장했다. 더 앞선 60년대와 비교하면 무려 200배가 성장했다. 그런데 개인소득이 100매 증가하기는 했는데, 지난 5년간은 중가세가 멈춰 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소득 2만 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발전해오던 구동력을 잃지 않았나, 뭔가를 바꿔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진대제= 맞다. 앞으로 40년, 그야말로 앞서가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과학기술 분야는 어떤가.

◇김도연= 미국 NSF에서 만든 자료를 보면 인류 역사를 6000년간의 농업시대 그리고 산업시대, 정보화시대 순으로 구분한다. 우리는 지금 정보화시대의 끝자락에 있다. 그 다음으로는 나노바이오, 융합 시대로 예측한다. 특징적인 것은 기술적으로 점점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또 변화의 기간은 짧아지고 폭은 커지고 있다.

◇진대제= 융합기술시대의 도래를 말했는데 많은 분들이 융합을 언급한다. 과연 융합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을 얘기하는 건가.

◇김도연= 많은 전문가에게 물어보는데 얘기하는 답이 모두 다 다르다. 바로 이것이 융합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어떤 분야는 아니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서로 만나 뭔가를 하는 것. 여기서 새로운 지식과 시장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융합이다. 융합 기술을 위해 대학에 새로운 과를 만드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이보다는 남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남에게 내 것을 보여주는 관용이 중요하다.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과학, 철학, 인문, 예술 등이 함께 녹아들어야 한다.

◇진대제= 변화와 혁신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결국 이를 드라이브 하는 것은 융합과학기술이라고 지적으로 들린다. 구체적으로 융합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나.

◇김도연= 좋은 지적이다. 앞서 말했듯 분야별 담장을 없애고 협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은 과학기술 분야뿐 아니라 소득 2만 달러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요소다. 사실 우리사회는 갈등이 많은 사회다. 모든 분야에 `갈등`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을 정도다. 이는 근본적으로 서로 폐쇄된 조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협력해야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 구성원의 사고나 행동양식이 고착돼 변화를 거부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각종 제도나 업무 프로세스 관행 등도 경직돼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바꿔야 한다.

◇진대제= 앞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것은 과학이라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김도연= 사실상 다른 길이 없다. 과학기술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수입하는 에너지만 보더라도 한국은 백척간두에 있다. 석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만 되니 우리경제는 바로 주저앉을 수 있다. 야마니 사우디 석유장관은 제1차 석유위기 때 산유국 장관회의에서 기름 값 너무 올리지 말라고 경고한 적 있다. 기름값을 너무 올리면 이를 대체할 다른 기술이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는 석기 시대의 종말은 돌이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우리에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기술이 시급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는 대목이다.

◇진대제= 한국정부는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을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김도연= 한국은 정부연구비 측면에서 비교적 잘하는 나라다. 지난 2008년에 11조원에서 매년 10% 증가, 올해는 16조의 연구개발 자금을 쓰고 있다. 매년 10% 씩 증가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과 한국뿐이다. 중국의 약진이 무섭다. 중국은 지난 10년 간 연평균 23%씩 올랐다. 한국이 2003년 5조원에서 10년 사이에 3배 됐는데 중국은 같은 기간 무려 8배가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오는 2022년이면 중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R&D자금을 펀딩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진대제= R&D자금과 관련해서는 국과위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 않나. 규모는 작지만 R&D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국과위가 하는 일이다. R&D자금도 세금이고 보면, 국민의 세금을 효율적으로 써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요구는 당연하다. 현재 16조원의 R&D자금을 30개 부처·청에서 사용하고 있다. 국과위는 이를 보고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기획하고 예산을 배분하고, 또 평가한다.

◇진대제= R&D예산 가운데 상당수를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알다.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만큼 이들 기관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근 정부 차원의 출연연 구조개편 작업이 추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김도연= 16조원의 연구비 가운데 4조 정도를 출연연에서 쓰고 있다. 출연연은 한마디로 국립연구소다. 정부에서 연구비 주고 이를 통해 연구를 진행한다. 27개 출연연 있는데 문제는 연구소마다 벽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로봇만 하더라도 KIST를 비롯해 원자력연구원 등 다양한 기관에서 연구하면서 연구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잘 알지 못한다. 출연연 선진화를 위해 국과위 설립 이전에도 출연연 발전민간위원회를 통해 고민했다. 여기에서 새로운 국가과학기술시스템을 구축하고 출연연 발전방안 만들어 제시했다. 종합하면 출연연 발전방안은 출연연을 묶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것들을 제어하기 위해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만들라고 제안했다.

당초 민간위는 출연연 20개 묶어서 단일법인 만들고 벽을 허물어주기를 원했다. 국과위가 이를 위해 노력을 했지만 민간위 요구와 일치하지 않았다. 부처는 출연연을 하나씩 갖고 싶어 하는데 설득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악기를 잘 연주하는 개인주자 만으로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를 만들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각 연구원 한명씩은 일을 잘 하지만 모두 따로 떨어져 있다. 출연연을 단일법인화 한다는 것은 융합, 전문성 살리면서 협력하기 위한 것이다. 마치 각 연주자가 다른 연주자의 호흡소리를 듣고 멋진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리=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