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아웃(black out)` 공포가 여름철 무더위 예보와 함께 몰려왔다. 지난해 9월 전국적으로 발생했던 대규모 정전사태가 올해는 고리 원전 가동 중단으로 전력난이 가중돼 3개월 먼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웃나라 일본도 전력 블랙아웃 공포에 몸서리치고 있다. 지난해 원전 사고 이후 모든 원전의 가동을 멈춘 일본은 전력난으로 온 나라가 의무 정전을 실시한다고 하지만 올여름 블랙아웃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일각에서 원전 재가동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내지만 원전 사고의 무서움을 몸소 겪은 일본 국민의 반대 여론이 거세다.
블랙아웃은 통상 천재지변 등으로 전원 공급이 끊어지는 것을 뜻하지만 여러 분야에서 다른 용도로 쓰인다.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전투기에 탑승한 조종사의 뇌나 망막에 피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의식을 잃는 것을 지칭한다. 또 방송에서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질 때도 `블랙아웃이 됐다`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노동조합의 보이콧을 나타내는 말로 통용된다.
사용처는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바로 `무방비 상태`다. 블랙아웃이 일어났을 때 공포가 생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본질은 같지만 공포의 중량은 다르다. 전투기를 몰지 못하거나 방송 촬영이 중단되는 것과 한 국가에 전기 공급이 끊겼을 때 몰려오는 공포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한여름 무더위에 에어컨을 못 켜 고생하는 것 따위는 공포 축에도 못 든다. 블랙아웃 상태가 되면 전등만 꺼지는 게 아니라 인터넷도 끊기고 통신도 마비된다. 정보 채널이 막히니 눈과 귀를 모두 가려버리는 셈이다. 지난해 일본 대지진 당시 통신이 끊어지자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답답해하던 일본 국민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력 블랙아웃이 발생한다면 전적으로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절전을 독려하기에 앞서 국민을 안심시킬 해법부터 모색해야 할 때다.
서동규 국제부 차장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