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수도권 지역에서 오는 24일 예정된 적격심사낙찰제 개정안 설명회를 백지화했다. 그에 앞서 준비된 광주, 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 설명회도 취소했다. 지난해 공공기관 발주공사 최저가 낙찰제 확대에 반기를 들었던 중소건설업계가 또 다시 제동을 건 탓이다.
정부는 지난해 정부계약제도를 손질하며 최저가 낙찰제 적용 대상을 30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업계 반발로 이 계획은 2014년 1월 시행으로 유예됐다. 이 사이 보완책으로 정부가 꺼내 든 카드가 적격심사낙찰제 개선안이다. 100억~300억원 사이 공사에 이를 적용한다는 의도다.
먼저 두 제도의 차이점을 짚어보자. 최저가 낙찰제는 말 그대로 발주자가 정한 공사금액(예정가격) 이하 범위에서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업체를 선정하는 제도다. 적격심사낙찰제는 여기에 추가로 기술능력, 공법, 품질관리 능력, 시공경험, 재무상태 등을 함께 평가해 입찰업체 적격 여부를 가린다. 중소건설업계는 적격심사낙찰제가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일 뿐 아니라 최저가 낙찰제 확대 시행을 앞당기기 위한 정부의 꼼수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의 대립 상황을 지켜보는 정보기술(IT) 업계 관점은 조금 다르다. 관건은 적격심사낙찰제가 아니라 최저가 낙찰제다. IT업계는 이전부터 공공조달시장에서 입찰가격과 기술능력을 함께 평가하는 적격심사낙찰제 적용을 받고 있다. 공공서비스 근간을 세우는 공사인 만큼 우수하면서도 안정된 기술력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기술과 가격 비중을 8:2 또는 9:1로 평가하는 공공사업도 적지 않다. 가격보다는 기술품질을 당락 기준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현이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불합치에서 온다. 특정분야 기술력을 확보한 IT기업이 입찰에 참여하는 상황이라 기술 자체는 변별력이 되지 못한다. 때문에 기술에 절대적인 무게비중을 두어도 당락은 가격에서 결정된다. 기술은 기본이고 가격까지 파격적으로 낮춰야만 낙찰이 보장되는 형국이다.
이론상 최저가 낙찰제는 완벽하다. 정부는 예정가격보다 낮은 금액으로 공사를 발주할 수 있어 국민 세금부담을 낮출 수 있다. 또 업계는 낮은 가격에도 이익을 낼 수 있도록 기술개발과 원가절감 노력을 강화하게 돼 결론적으로 기업 및 국가경쟁력이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과당경쟁이 필연적인 시장구조에서 업체는 무리한 출혈경쟁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기대하던 고품질 성과물을 얻지 못한 공공기관은 유지보수비용 증가에 따른 재정집행 비효율을 감당해야 하는 게 지금의 실태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조달시장을 통해 관련 산업을 육성하면서 기업 및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당초 순기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데 있다. 정부도 안다. 낙찰업체가 대기업일 경우 출혈경쟁 부담이 고스란히 하청 또는 협력관계 중소기업에 그대로 전가된다는 게 정부의 분석 아닌가. 문제 원인은 기업 입찰행태가 아니라 정부 입찰제도 내에 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42조에 명시된 최저가 낙찰제 원칙에 있다.
정부가 새로운 원전 건설부터 적용하기로 한 최고가치낙찰제도 역시 근간은 최저가 낙찰제다. 낮은 가격이면서 기술 수준이 높은 시공사를 선정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모순이다. 싼 게 비지떡이다. 맹목적으로 가격을 후려치기보다 가치에 부합하는 값을 쳐주려는 정부 의지가 산업을 살리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