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기인 삶과 꿈]장혜진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

[여성과기인 삶과 꿈]장혜진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

종종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렇게 시작하는 메일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 지원하려고 하는데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고 싶다는 여자 후배들이다. 그럴 때면 내가 처음 입사하던 때가 생각난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취업을 위해 여러 기업에 지원하고 있을 무렵, 우연히 현대자동차 채용공고를 보게 됐다. 으레 `기계공학 전공자를 뽑겠지`라는 생각에 간단히 훑어보고 지나가려는데 `재료, 화공` 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 자동차회사도 이런 일을 하는구나`라는 호기심이 지금 나를 자동차 재료 연구원으로 만들었다.

이전에는 차를 볼 때 디자인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화학 전공자 입장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본 자동차와 개발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흥미롭고 즐거웠다. 재료 연구 측면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산업적으로 사용되는 거의 대부분의 재료들이 자동차라는 제품 자체 또는 그 제작 공정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금속· 플라스틱· 고무· 윤활유· 도료 외에도 요즘은 친환경 트렌드에 따라 바이오와 재생 재료까지 자동차 제작에 사용된다. 많은 재료가 자동차 안에서 감당하는 각각의 역할이 있고 또 서로 다른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그에 대한 사용 기준이나 요구 성능은 매우 까다롭게 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 맞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연구하는 사람은 먼저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이미 개발된 재료 중에 적합한 것을 발굴하고 수많은 규격과 시험방법에 따라 검증·분석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자동차 재료 연구의 최대 장점은 서로 다른 업무를 맡는 사람들, 다양한 기술적 배경을 가진 연구원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실체를 설계하는 기계공학 전공자를 비롯해 자동차를 제어하고 여러 편의기능을 제공하는 전자시스템을 다루는 전기·전자공학도, 내외장 전체와 컬러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한께 어울려 일을 한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남성 영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여성으로서 자동차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느낌을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소 업무를 할 때 특별한 장단점을 느껴본 적 없고 그 동안 회사 내 여성연구원 비율이 꾸준히 증가한 터라 이젠 어딜 가도 여성연구원이 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봄, 그리고 가을. 후배들이 메일을 보내오는 채용시기가 되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도움이 될지 고민에 빠진다. 그렇지만 이 고민은 메일을 보낸 후배가 우리 회사에 합격했다며 답장을 보내오고, 때로 연구소에서 직접 만나게 될 때, 반가움과 뿌듯함으로 변한다. 지금은 후배들에게 나와 동료 선후배 여성연구원들이 걸어온 길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지만, 앞으로 더 많은 후배들이 자동차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길을 우리와 함께 걷게 되길 기대해 본다.

장혜진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 arete8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