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전력부족 사태와 원자력

[ET단상]전력부족 사태와 원자력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존에 필수적이지만 평상시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낭비하는 것들이 여러 가지 있다. 물이 대표적이다. 비용이 적고 줄어드는 것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니 누구나 자원의 유한성은 알면서도 아껴 쓰기보다는 당장의 편의에 눈이 멀어 펑펑 써대기 일쑤다.

현대 사회에서 `물`과 같은 존재가 바로 전기다. 집이나 사무실 기기부터 교통신호나 의료 시설을 비롯한 사회 인프라까지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산간벽지도 최소한 전기는 사용해야 정상적인 삶이 가능하다.

올여름 이 `전기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냉방용 수요에 대응할 전력 부족이 예상되면서 정부가 수급 대책을 조기 시행하는 등 벌써부터 비상체제에 들어갔다. 보령 발전소 화재에 원전 가동 중단까지 겹쳐 최근 전력 예비율이 7.0%, 예비 전력량으로는 422만㎾까지 떨어졌다. 22만㎾만 더 하락하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비상상황에 들어가게 된다. 예비 전력량에 400만㎾ 양수발전이 더 마련돼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하기만 하다.

전력부족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공급에 비해 낭비 수요가 많아 벌어지는 일이다. 한여름 문을 열어놓은 채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켜고 있는 상점, 사람이 없어도 환하게 거리를 밝히고 있는 네온사인, 현실화되지 않는 전기료 등이 모두 낭비 수요다. 그럼에도 당장 고치기가 어렵다. 생활 습관을 당장 바꾸기에는 `낭비적 편리`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 유지 배경에는 바로 이런 고심도 포함돼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탈원전 여론이 늘었지만 안정적 전력수급, 경제성, 기후변화 등을 고려할 때 전력 생산을 위한 공급 수단으로서 원자력 만한 발전 수단은 아직까지 없다.

발전원별 원가를 보면 원자력은 약 39.7원으로 석탄 60.8원, 석유 187.8원, 태양광 566.9원에 비해 상당히 경제적이다. 향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성장에 따른 전력 수요 증대 대응, 대체 에너지의 낮은 경제성과 기술적 한계 등도 당장 원자력 이외의 현실적 대안을 찾기 힘들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가 원전 포기 정책을 발표하긴 했지만 대다수 국가가 안전성 확보에 주력하며 급격한 정책 변화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본이 50년 만에 원전 제로 시대를 맞이한 일을 두고 우리나라도 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 원전 안전성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의 선택은 확고한 계획 아래 추진된 것이 아니라 악화된 여론에 밀려 형성된 일시적 상황이라는 점에서 우리와는 상황이 판이하다. 원전 정지로 인한 전력 부족 때문에 일본 국민이 겪는 불편함과 사회적 손실을 고려하면 우리가 참고할 모델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원자력발전 자체의 결함이 아닌 자연재해와 대응 부족으로 인한 사고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이에 대응할 기술 개발과 전문가를 통한 법적, 제도적 대안이 모범답안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해 9월 블랙아웃이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우리에게 원자력 이용 확대는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대안이다. `타산지석`이란 말처럼 `후쿠시마`를 거울 삼아 안전성 확보에 최선을 다할 때 원자력은 `우려의 대상`이 아닌 `대안 에너지`로서 국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장상구 원자력통제기술원장 skchang@kinac.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