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그린효과 높이는 채찍과 당근

정부가 한 달을 앞당겨 지난 1일부터 여름철 전력수급 관리에 들어갔다. 때 이른 더위에 전력수급 적신호가 켜진 탓이다. 대형 건물 냉방온도를 26도 이상으로 제한했다. 출입문을 개방한 채 냉방기를 가동하는 다중 이용시설에는 과태료도 부과한다.

공무원 하계 근무복장도 바꿨다. 반바지에 샌들 착용을 허용하는 `슈퍼 쿨비즈` 개념을 도입했다. 주 1회이던 `캐주얼 데이`를 연중 확대한 구청도 있다. 자율복장이 마음자세까지 흩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뭔가 해보려는 정부의 고충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효과는 기대 이하다.

아껴 쓰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에너지소비 환경이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적절한 규제는 에너지소비 구조개선은 물론이고 기술발전을 유발한다. 1993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에너지스타` 제도를 전격 도입했다. 대기전력을 30W 이하로 줄인 PC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제도다. 그 해 4월 지구의 날 기념식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선언한다. “연방정부 정보기기 구입 시 EPA 규격 제품만 구입하겠다.” 미국 전체 전력소비량 5%를 차지하는 PC의 절전을 유도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미국 방침에 세계 PC업체가 움직였다. 그때 그린PC가 나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금성사 `그린알파486`, 삼보컴퓨터 `아마데우스`, 대우통신 `윈프로486 그린PC`가 이 과정에서 개발됐다. 절전 기술은 진화했다. 레이저프린터, 모니터, 하드디스크드라이브 등의 주변기기로 확산됐다. 또 소비자의 PC 구매 선택기준으로 자리잡았다.

19년 전 일이지만 에너지절약(그린) 코드는 제조사나 소비자 모두에 여전히 유효하다. 그린은 주요 경쟁력 차별화 포인트자 광고 소구점이다. 지난해 하반기 삼성전자는 독일, 미국, 싱가포르, 일본 등을 돌며 그린 메모리 솔루션 세미나를 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자리에는 하드웨어 제조사 관계자가 아닌 현지 기업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초대됐다.

세미나 내용은 에너지 절약이었다. 세계 645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가동 중인 서버 3200만대에 그린 메모리를 적용하면 139억달러의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회사는 설파했다. 여기서 50메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고, 이는 나무 15억 그루를 심는 효과이자 1200만대의 자동차 운행을 멈추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실제 인터넷데이터센터(IDC)는 녹색화 요구가 가장 큰 분야다. 또 노력 여하에 따라 눈에 띄는 효과를 단기간에 볼 수 있는 분야기도 하다. IDC 한 곳에서 아파트 1만 가구에서 사용하는 전력이 소모된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그린메모리를 들고 CIO에게 갔다.

우리 정부도 전기 먹는 하마로 인식되는 IDC의 전력소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그린IDC 인증제를 연말부터 도입한다. 하지만 업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IDC를 그린화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정부가 제시한 혜택은 적고 실현 가능성도 낮다는 지적이다. 그린 코드를 강화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 그래서 그에 부한한 채찍(규제)과 당근(혜택)은 절실하다.

전기를 아껴 쓰라고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전력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에너지 과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과학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워런 비핏은 “그린이 대세고 환경문제를 소홀히 하면 망한다”고 지적한다. 맞다. 생존 필수요소가 된 그린을 실현할 수 있는 확실한 규제와 혜택이 이제는 나와야 한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