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제도 탓에 장사를 못하겠다.” “본사 정책에 맞춰 잘 준수하고 있다.”
8일 오후 서울 종로 일대에서 벌어진 휴대폰 가격표시제 합동단속 현장. 단속반이 가격표시제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시작하자 매장마다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이동통신사 직영점을 비롯한 대리점은 비교적 성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판매점에서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식경제부는 이날 서울시, 종로구청,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와 함께 종로 일대 휴대폰 대리점·판매점을 대상으로 가격표시제 합동 단속을 실시했다.
휴대폰 가격표시제는 매장마다 다른 휴대폰 가격표시 양식을 실 판매가 중심으로 통일해 고지하도록 한 제도다. 1월부터 온오프라인 매장과 홈쇼핑 등 휴대폰을 판매하는 모든 유통망에 적용됐다. 지경부가 지자체와 합동 단속에 나선 것은 지난 1월 이행실태 현장 점검 이후 5개월 만이다.
대리점 8곳, 판매점 4곳 등 총 12곳을 점검한 결과 판매점 2곳이 시정권고를 받았다. 판매점은 휴대폰 유통 시장에서 이통사, 대리점 다음 단계에 해당한다. 대리점이 통신사 한 곳 제품만 취급하는 반면에 판매점은 여러 대리점과 거래하며 통신 3사 휴대폰을 모두 판매한다. 규모는 대리점에 비해 영세하다.
시정권고를 받은 판매점 2곳은 휴대폰 가격표를 만들었지만 사용하지 않고 매장 서랍 안에 넣어놓았다. 제도 시행 초기 비치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 판매대에서 치워버렸다.
해당 점주는 “이통사 판매정책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격이 바뀌는데 의미 없는 가격표를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항변했다. 다른 매장에서도 “왜 하는지 모르겠다” “거꾸로 가는 제도다” “탁상행정이다” 등 불만이 쏟아졌다.
대리점은 상황이 좀 나았다. 방문한 8곳 모두 가격표시제를 준수했다. 각 이통사가 배포한 양식에 맞춰 제품별 가격표가 비치됐다. 매장 입구에 가격표시제 캠페인 스티커를 붙여놓은 매장도 눈에 띄었다.
단속원으로 나선 조영지 종로구청 산업환경과 담당은 “앞서 구청 개별 단속 때도 대리점은 비교적 가격표시제를 잘 준수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실제 판매가격과의 괴리다. 대리점 역시 수시로 바뀌는 할인 정책에 따른 실 판매가는 반영하지 못했다. 가격표만으로 소비자가 실 구매 가격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매장 직원과 개별 상담을 해야 실제 가격을 알 수 있는 구조다. 대리점 관계자는 “공식 가격을 고지하는 효과는 있지만 (실제 가격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이 얻는 편익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초 제도 시행 이후 적극적인 홍보로 가격표시제 인식은 확산됐지만 실제 소비자 편익 향상과 유통시장 선진화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매장 관계자들은 제도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정부가 법으로 규정하니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이었다.
근본적인 유통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매장 업주는 “이통사가 대리점과 판매점에 `리베이트(판매수당)`를 지급하는 한 가격표시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판매 과정에서 휴대폰 가격은 고무줄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제도운영을 책임지는 지식경제부도 같은 고민이다. 현장 단속에 나선 오재철 지경부 정보통신산업과 사무관은 “휴대폰과 통신서비스 요금을 분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사무관은 “십수년간 계속된 관행을 하루 아침에 바꾸긴 어렵다”며 “앞으로 적극적인 홍보와 제도 개선을 통해 가격표시제를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경부는 이날 단속을 시작으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가격표시제 단속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온라인 매장에도 관련 공문을 보내 가격표시제 준수를 촉구할 방침이다. 첫 위반 시에는 시정권고 조치가 내려지지만 2회째부터는 20만~30만원 과태료가 부과된다. 4~5회 이상 적발시에는 최대 500만원으로 과태료가 늘어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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