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TV·방송 시장 진출 움직임이 한층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3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인텔이 연내 `가상(Virtual) 케이블TV`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보도하면서 인텔의 TV·방송 사업 진출 소식에 불을 지폈다. 여기서 `가상(Virtual)`이란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유선 케이블이 아니라 인터넷 회선을 이용해 가상의 방송 네트워크를 구성한다는 의미에서다.
이번에는 로이터가 가세했다. 8일(현지 시각)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TV시청자의 얼굴인식이 가능한 셋톱박스를 개발하고 있다. 이 셋톱박스는 시청자의 구체적인 특성을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남녀 성별 구분이 가능하며, 성인인지 어린이인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인텔은 얼굴 인식 셋톱박스가 개발되면 방송사들과 광고주들이 시청자를 대상으로 보다 정확한 타깃 광고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 방송사들은 방송 콘텐츠에 대한 라이센스 수입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인텔 셋톱박스를 활용하면 보다 정밀한 광고 프로모션을 진행할 수 있어 매출 하락을 방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인텔의 시각이다. 그동안 방송사들은 닐슨의 시청률 조사 자료에 의존해 광고 영업을 해왔으나 닐슨의 시청률 데이터는 점점 디지털화되고 있는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인텔의 얼굴 인식 셋톱박스에 대해선 아직 방송사들과 콘텐츠 제공사업자들이 미심쩍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아직 기술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
현재 인텔은 방송 사업 진출을 위해 방송사, 미디어 사업자, 콘텐츠 제공업체들과 다각도로 접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빠르면 올 11월 가상 TV사업에 진출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인텔의 가상TV사업은 케이블TV사업자처럼 100여개의 방송채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보다는 적은 채널과 `비디오 온 디맨드` 방송을 유료 형태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인텔은 방송사업 진출을 위해 `미디어 비즈니스그룹`을 출범시켰으며 MS와 BBC 출신인 에릭 허거스, BBC,폭스,디즈니 등 방송사 임원 출신인 가스 앤시어 등 방송 분야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이들 전문가 풀을 활용해 교착 상태에 있는 콘텐츠 제공사업자, 방송 사업자 등과 프로그램 공급 협상에 돌파구를 찾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인텔과 방송 사업자간 협상은 더디기만 하다. 인텔은 방송 프로그램을 기존 라이센스료 보다 적게 주고 가져오려는데 반해 방송사들과 콘텐츠 제공 사업자들은 인텔에 특별히 할인율을 적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위성방송사업자나 케이블사업자보다 낮은 라이센스료를 받고 방송 프로그램을 제공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앞으로 인텔과 방송 콘텐츠 사업자간에 줄다리기는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인텔이 TV방송사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 시장이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고 있기때문이다. 인텔은 그동안 PC프로세서 시장에서 80%이상 점유율을 보였으나 스마트폰, 태블릿PC 시장에선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TV 시장마저 다른 프로세서 업체에게 넘겨준다면 인텔의 앞날이 불투명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인텔은 TV방송 사업 진출을 꾸준히 검토해왔다. 이번 얼굴 인식 셋톱박스 개발이나 가상 케이블 사업 진출 보도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인텔은 케이블 사업자인 컴캐스트에 인텔 기반의 셋톱박스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X1` 플랫폼으로 불리는 이 셋톱박스는 스마트폰으로 조정할 수 있으며, 데이터 센터 역시 인텔의 칩을 채택한 하이엔드 서버로 구축되어 있다.
인텔의 TV방송 사업 진출은 다양한 방향에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디어 시장 경험이 일천한 관계로 진입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오랫동안 방송사업을 준비해온 MS도 올해 1월 가입형 온라인 방송 서비스의 런칭 시점을 연기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