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인 2000년은 우리나라에 벤처 광풍이 불던 시절이다. 나는 30대 초의 세상 물정 모르는, 엔지니어 출신의 순진한 사업가였다. 당시까지 회사를 세 개나 만들어볼 만큼 꿈 많고 열정이 넘쳤다. 1999년 벤처 투자 열풍이 불면서 나도 시대를 앞서는 서비스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광대역 유선 인터넷망을 활용한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가 개화하던 시절이다.
사업계획서를 쓰고 100군데 이상의 벤처캐피털에 사업을 설명했지만 투자를 받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개인 투자자 몇 명이 돈을 모아서 투자하겠다고 제안했다. 엔젤 투자자였다. 사업계획서상 1차 투자 유치 목표 금액은 30억원이었지만 제안 금액은 훨씬 못 미쳤다. 개발을 시작하면서 추가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 제안을 수용했다. 엔젤 투자를 받은 다음 달부터 증시는 폭락했고 벤처 투자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사업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지만 경험상 90%가 운이라고 생각한다. 개발은 시작됐고 조직이 늘어나면서 투자금은 몇 달 지나지 않아 바닥났다.
우리에게 투자한 엔젤은 사회 경험이 일천한,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초기 기업에 투자해 1년 안에 투자 수익을 회수하기를 바랐다. 몇몇 엔젤은 다른 사람에게 지분을 매도하기도 했다. 어느 날 모르는 사람이 투자가라며 찾아와 “회사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나를 포함한 이사진을 사기죄로 고소하겠다는 것이다. 3년에 걸친 소송 끝에 혐의는 없어졌지만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매달 플랫폼전문가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컨설팅회사·벤처기업·학계 등에서 실무경험을 쌓은 사람들과 업계 트렌드와 플랫폼 전략을 토론하는 모임을 진행한다. 최근 이들과 그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엔젤클럽을 만들었다. 목표는 첫째, 업계 미래 방향을 보는 통찰력과 기술력으로 벤처기업을 돕고, 둘째, 업계에 기여하면서 우리도 배우고, 셋째, 우리가 가진 네트워크로 국내 벤처들에 기업 인수합병(M&A)이라는 또 다른 성공 목표를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최근 활동 중인 정부 자문기구에서 “어떻게 하면 국내 IT 생태계가 활성화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개발 대가 산정,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 환경 조성, 수출 지원 등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내 대답은 “업계 후배에게 큰 바다를 항해하는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꿈만 제시하고 나룻배 한 척만 주는 것은 무모하다. 나는 플랫폼전문가그룹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침반이 되려고 준비하고 있다.
황병선 청강대 모바일스쿨 교수 marsninehwang@gmail.com 블로그 퓨처워커(futurewalker.kr)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