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서민이 쓰는 저가 가전제품도 개별소비세 대상?

과거에 특별소비세라는 게 있었다. 고소득층의 낭비와 사치생활 풍조를 억제하고 건전한 소비생활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2008년부터 개별소비세(개소세)로 명칭을 바꿨다.

[ET칼럼]서민이 쓰는 저가 가전제품도 개별소비세 대상?

고가의 사치 품목에나 붙을 법한 개소세가 냉장고와 세탁기·에어컨·TV에도 붙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시적(2010년 4월∼2012년 12월)이긴 하지만 일정 용량이나 크기를 넘는 저효율 가전제품에 5%의 개소세가 붙는다.

지난해 기준으로 과세대상 제품을 보면 고급 제품인 양문형 냉장고보다 저렴한 일반형 냉장고(630L) 비중이 99.9%인 것으로 나타났다. TV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50인치 이하 PDP TV가 69.2%를, 에어컨은 15평 이하 제품이 48.3%를 차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가 모델보다는 서민층이 많이 쓰는 저가 모델에 개소세를 부과하는 비율이 높았다. 개소세 본래 취지와는 달리 서민층에 과세부담을 가중하는 형국이다. 개소세 과세율은 5%지만 개소세액의 30%인 교육세를 감안하면 실제 세율은 6.5%가 된다.

개소세는 시행 전에 국회에서도 가전제품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됐다. 가전제품 개소세는 정부가 예상한 액수보다 훨씬 적게 걷혔다. 정부는 당시 연간 500억원 세수를 예상했지만 2010년 4월부터 5분기 동안 걷힌 개소세는 94억3000만원에 그쳤다. 실효성 논란도 불거졌지만 정책 신뢰성을 위해 일몰기간을 준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부 방침이 반영됐다. 그런데 정부는 최근 열린 제16차 녹색성장위원회 배포 자료에서 올해 말로 끝나는 가전제품 개소세의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가전업계는 이른바 `멘탈 붕괴`에 빠졌다. 개소세 과세품목에서 저가 제품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서민경제 부담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짐을 뜻한다. 영업이익률이 3% 이내인 가전산업 특성상 수익감소가 불 보듯 뻔하다. 수익이 감소하면 고효율 제품 연구개발(R&D) 투자가 어려워지고 고용도 줄어든다. 가전제품 개소세 만료시점을 연장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웃 중국을 보면 더 안타깝다. 중국은 최근 성장세가 둔화하고 내수가 위축되자 이달부터 절전 가전제품을 구입하면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과거 농촌지역에서 전자제품을 사면 보조금을 주던 `가전하향`이나 중고 가전을 새 제품으로 교환하면 보조금을 주는 `이구환신` 정책의 후속판이다. 저가 제품에 세금을 매겨 소비자와 제조사에 부담을 주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에너지소비를 줄이기 위해 선택한 고육책이겠지만 보급대수가 전체 내수의 0.4%에도 못 미치고 목표에도 모자라는데 굳이 본래 취지에도 어긋나는 개소세를 가전제품에 매겨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