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나무의 이름을 몇 가지나 알까요? 그리고 그걸 구분할 수 있는 나무 종류는? 열 손가락 안팎이지 싶습니다. 필자만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도시 인구가 전 국민의 태반을 차지하는 요즘엔 나무래야 기껏 가로수 정도, 좀 더 정성을 들인다면 수목원에 가서 이름이 적힌 푯말을 읽는 정도인 것이 고작 아닐까요.
![[e북 초대석] 나무를 만나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6/14/293943_20120614102426_649_0001.jpg)
야생화 사진가이자 풀꽃나무 칼럼니스트는 나무에서 사람을 봅니다.
“사람처럼 희로애락이 있고 생로병사를 겪으며 대지의 품을 뚫고 나와 첫발 디딘 자리에서 먼 길을 살아가는 나무. 치열한 경쟁과 시련 속에서 살아남아 제 나름의 꽃을 피우고 제 몫의 열매를 몸에 지닌 마지막 수분마저 공중에 날리는, 생을 향한 나무의 자세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니 그가 본 나무는 결국 사람 이야기입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에 딴죽을 건 대목이 눈에 와 닿습니다.
땅 위에 떨어져 겨우 발붙인 씨앗이 펼쳐놓은 떡잎 두 장만으로 집안내력을 짐작하는 것은 섣부른 짐작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떡잎은 부모에게서 받은 처음이자 마지막 양식일 뿐, 보장받은 미래가 담긴 것은 아니라는 거죠.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늘 가득 무성한 잎을 틔우고 가지를 뻗어 드높은 나무가 되고 숲의 온전한 일원이 되는 일까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애초에 정해진 운명의 방향대로 끌려가야 한다면 세상 살아가는 일은 재미가 없다” “떡잎이 크다고 큰 나무가 되는 건 아니다. 큰 나무일수록 외려 작은 씨를 품는다” 지은이가 나무에서 얻은 `생각`은 깊은 산속 어느 도 닦는 이의 가르침을 능가합니다.
계절별로 나눠 만나기 힘든 나무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에는 의외로 재미있는 구절도 담겼습니다. 이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사시나무처럼 떤다”의 사시나무가 그렇습니다. 흔히 백양나무라고 불리는데 키가 크고 숲 속에 섞여 있다 보니 어지간한 눈썰미가 아니면 구분해내기 쉽지 않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들이 서로 부딪혀 내는 소리를 떤다고 표현했는지 몰라도 왜 사시나무를 유독 떠는 데 비유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합니다. 오히려 의연하게 우뚝 서 있는 사시나무에게서 두려움을 찾아볼 수 없다고 귀띔합니다.
책에는 장모의 사위 사랑을 증명하는 사위질빵, 진시황이 불로초인줄 알고 먹었다는 시로미, 바닷가 모래땅에서 튼튼한 수염뿌리를 내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순비기나무, 소금을 만드는 붉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갖가지 사연을 안고 등장합니다.
아스팔트와 에어컨 바람이 오솔길과 산바람보다 친숙한 이들은 물론 아련한 추억 속의 나무 한 그루쯤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생생한 삶의 향기를 선물하는 책입니다. 책갈피 속에 햇볕과 바람을 품고 있는 책이기도 하지요.
책 속의 한 문장: 서어나무가 소나무를 몰아내고 최후 승자가 되는 이유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습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작게 자라지만 햇빛 부족한 음지를 견디며 한해 한해 키를 높이다 보면 결국 숲은 서어나무의 지배 하로 들어오게 된다. 그때부터는 서어나무가 기준이 된다. 숲의 나무들은 서어나무의 눈치를 보면서 서어나무에 맞춰 자신들의 성장 속도를 조절한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