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기인 삶과 꿈]안인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원

[여성과기인 삶과 꿈]안인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원

2000년대 초 나는 시험관과 각종 기기를 벗 삼아 실험 일지를 일기 쓰듯하며 생활하던 전형적인 생명공학도였다. 무언가 궁금한 생명현상을 내 손으로 밝혀낼 수 있는 가능성이 좋았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지의 성분을 분석해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교내 심포지엄 팸플릿에서 `바이오인포매틱스`라는 낯선 문구를 보았고 이 분야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정말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확신이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았다.

`바이오인포매틱스`라는 학문이 불모지 같았던 시절,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내에 `바이오인포매틱스센터`가 설립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대전으로 내려왔던 때가 2002년 8월이니, 벌써 올해로 인연을 맺은 지도 10년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대학 내 생물정보학 학과들도 신설되고 시스템 생물학·유전체학·단백체학·대사체학·피지옴 등등 `바이오인포매틱스`라는 모체로부터 정말 다양한 분야가 파생되어 제 각기 학문의 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강산이 한번 변하긴 변한 모양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류는 급속도로 발전한 서열분석기술에 힘입어 생물체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유전정보의 홍수시대를 맞았다. 나는 다량의 유전체 정보로부터 숨은 패턴을 찾아내는 `계산 유전체학(computational genomics)` 연구자다. 보통 수많은 계산 과정이 필요해 성능 좋은 컴퓨터와 협업은 필수다. 생명공학도로 출발해 컴퓨터 언어 장벽은 예견된 걸림돌이었지만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심정으로 파고들다보니 이제는 컴퓨터와 세상에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됐다.

슈퍼컴퓨터를 사용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체 정보를 연도별로 정리하고 시간 흐름에 따른 바이러스 진화 패턴을 계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각 연도별로 숨겨진 변이 패턴을 계산해 내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 바이러스 변이 양상을 예측해낼 수 있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급작스런 질병의 대유행 현상은 현저히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몇 해 전부터 이공계 여대생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계속 들었던 고민은 바로 `미래 진로를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가` 였다. 고등학교 시절 이공계의 순수한 열정으로 학과를 정하고 졸업반에 이르렀지만 막상 사회에 첫 발을 디디려고 하니 생각해야 할 것이 너무도 많고 복잡하다는 이야기다. 대학 졸업반 시절도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설렘과 불안감이 미묘하게 공존했던 것 같다.

사회 첫 발을 디딘지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야기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기회`라는 이름의 문이 내 앞에 나타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두드려 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내 길이라면 반드시 열리고 내 길이 아니라면 `감사하게도` 절대 열리지 않는다. 머지않은 미래에 펼쳐질 일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자기 앞에 주어진 문을 지혜롭게 헤쳐 나아가는 젊은 과학자가 이 땅에 가득한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안인성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선임연구원 isahn@kis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