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따뜻한 IT`

인간의 감성이 사라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또 과연 유지가 가능하긴 할까. 이 같은 물음에 답하는 영화가 지난 2003년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한 `이퀼리브리엄`이란 영화다. 전쟁의 원인이 인간의 감정과 욕구에 있다고 생각해 인간의 감정을 지우는 약을 먹으며 살아가는 미래사회를 그렸다.

영화는 이성과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고 인간의 감성을 힘겹게 되찾는 것으로 매듭지어지지만, 감성이 사라진 미래사회가 얼마나 재미없고 위험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를 합성한 용어가 디지로그다. 첨단 디지털 사회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바로 아날로그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강조한 디지털 세상 `차가운 IT`에서 인간 본연의 감성을 되찾고 인간을 돕는 `따뜻한 IT`가 요즘 눈길을 끈다.

지난해 방영한 MBC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는 청각장애 주인공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휴대폰은 전화가 오면 시계와 불빛으로 알려주고 상대방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 통화가 가능하게 해준다. 아직 상용화한 기술이 아니어서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한 모습이지만 드라마 방영 후 방송국에 휴대폰 구입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구글의 연구과학자 티브이 라만 박사는 14세 때 녹내장을 앓은 뒤 시력을 잃었다. 지난달 `서울디지털포럼 2012`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는 “시각장애인들 역시 평등하게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웹 접근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대학가에도 따뜻한 IT 바람이 분다. 장애인 등 특수교육에 특화된 대구대학교의 홈페이지가 최근 한국정보화진흥원으로부터 웹 접근성 품질마크를 획득했다. 대구대는 장애인의 장애 유형에 관계없이 정보통신 보조기기를 활용, 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대구가톨릭대학교 뇌공학연구센터도 치매를 앓는 노인이나 뇌 질환자를 위해 간편한 진단과 안전한 치료를 보장할 수 있는 연구에 한창이다.

기업도 따뜻한 IT에 동참했다. 금융IT 전문기업인 코스콤은 중증 장애인들에게 IT 보조기기를 지원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여수엑스포에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감성체험관을 꾸며 관람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감성을 자극할 수 없는 첨단기술은 이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가 힘들어졌다는 의미다.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일반인에게 생활의 편리는 주는 따뜻한 IT가 대세인 시대가 바야흐로 도래했다.

정재훈 전국취재 부장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