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삼성-애플 특허 소송은 소모전

과거 선발 기업이 무섭게 따라오는 후발 기업을 견제하는 무기는 가격이었다. 초기 시장을 장악해 폭리를 취한 선발 기업은 후발 기업이 막대한 연구개발(R&D)비를 투자해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압박했다. 후발 기업이 제품을 제대로 팔아 보지도 못하고 포기하면 선발 기업은 다시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가격 대신 특허소송이 시장을 지키는 무기다. 특허 침해를 이유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거나 소송을 걸면 후발 주자의 영업이 동결되기 때문이다. 송사가 이뤄지는 수개월에서 몇 년 사이에 소송을 제기한 선발 기업은 시장에서 실리를 거둔다. 반대로 후발 기업은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커다란 타격을 입는다.

스마트폰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휴대폰 시장은 특허소송의 결정판이다. 지난해 봄 애플이 갤럭시S 등 스마트폰 3종과 갤럭시탭 10.1이 자사 기술특허와 디자인을 침해했다며 삼성전자를 제소한 것이 시발점이다. 갤럭시 시리즈가 아이폰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오자 다급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삼성과 애플은 세계 9개국에서 30여건에 이르는 소송전을 펼쳤다. 두 회사는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에서 승패를 주고받는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최근엔 삼성전자가 네덜란드에서 본안 소송으론 처음 승소했다. 삼성은 승소해서 명분을 챙겼고 애플은 실리를 챙겼다. 결론적으로 삼성이 온전히 이긴 것도 아니고 애플이 완패한 것도 아니다. 소모전일 뿐이다. 더욱이 두 회사 간 소송은 진행형이다. 22일에는 독일에서 판결이 있고 다음 달에는 미국에서 소송 결과가 나온다.

장기간에 걸친 특허소송은 모두에게 득 될 게 없다. 소송으로 발생하는 지출은 두 회사뿐 아니라 소비자도 부담해야 할 비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