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116>`한자(漢字)`와 `한 자`

한자(漢字)는 한 자 한 자 차근차근 필사(筆寫)해야 비로소 그 의미를 터득할 수 있는 표의문자다. 공고를 다니면서 용접을 전공했다. 용접기가 부족해서 돌려가면서 용접을 해야 했기에 내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지루한 기다림을 달래기 위해 상용한자 3000자와 성문종합영어를 틈틈이 공부했다. 고등학교 때 일기 쓰는 습관이 있어서 접속사나 조사만 빼고 모두 한자로 일기를 쓰는 연습을 했는데 그게 한자를 익히는 과정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그런데 점차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 한자를 컴퓨터에서 쉽게 찾아 쓰는 좋지 못한 버릇에 길들어 점차 한자를 쓸 기회가 줄어들었다. 결과적으로 한자를 점차 그 의미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직접 쓸 수 있는 한자가 점차 줄어들게 됐다.

컴퓨터로 글을 쓰면 효율적이지만 악용하면 글쓰기 능력이 퇴화할 수 있다. 이곳저곳 자료를 찾아 복사해 붙이는 기능을 활용하는 편집의 마술을 부리면 순식간에 몇 십 페이지 글도 손쉽게 쓸 수 있다. 특정 내용을 복사하고 붙인 다음 `그리고` 복사하고 붙이고 `따라서` 복사하고 붙이고 `결론적으로` 복사해서 붙이면 순식간에 한 페이지 글이 완성된다. 한 페이지의 글을 완성했지만 `그리고` `따라서` `결론적으로`만 내 주장이고 나머지는 다 남의 글을 복사해서 붙인 것이다. 이런 폐단과 역기능을 방지하고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베껴 쓰더라도 손으로 직접 옮겨 쓰는 고통을 체험하는 것이다.

필사적(必死的)으로 필사(筆寫)하지 않으면 글쓰기 능력이 퇴화함은 물론이고 극단적으로 반드시 사망(必死)한다. 특히 한자는 표의문자라서 어느 정도 기본 한자를 익히지 않으면 한자 해독 능력은 향상되지 않는다. 한자의 원리를 터득하고 기본 한자를 어느 정도 쓸 수 있게 되면 한자를 조어해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영어의 `change`를 한자로 쓰면 `체인지(體認知)`가 된다. 몸을 움직여 직접 체험(體)하고 적용해보면 깨달음의 인식(認)이 오고 그 결과 정리된 것이 지식(知)이다. 이런 지식만이 내 생각과 행동,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