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8282

`빨리빨리(8282)`는 우리 민족성을 상징하는 대표적 단어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처음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라니 부연 설명이 필요 없어 보인다. 최근 스타트업 평가를 위해 방한한 구글 관계자도 이 말을 알았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DNA가 기술 급변 시대에 경쟁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하루하루 구식이 되는 게 IT”라며 “한국 스타트업은 빨리빨리 특성을 IT에 적용하면 비즈니스에 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스마트 환경에서 남보다 빠르다는 것은 상당한 경쟁력이다. 기술개발 환경이 보편화했기 때문으로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자가 승자가 된다.

그런데 이것이 커다란 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캐나다에서 만난 현지 기업인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특성 때문에 함께 사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벤처가 개발한 기술을 캐나다 시장에 내놓으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한 사례를 소개했다.

내용은 이렇다. 벤처의 기술과 가격은 매우 뛰어났다. 미국 제품이 장악한 상황에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국 기업이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고 시장에 무조건 빨리 내놓자는 요구를 반복했다. `제품이 좋은데 왜 시장에 내놓지 않느냐`는 반 협박에 함께 일하기 힘들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는 “제품에 하자가 하나라도 발견되는 날에는 모든 게 날아가는 곳이 북미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아이디어 상용화에는 분명 빨리빨리가 큰 힘을 발휘한다. 우리의 장점을 비즈니스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다. 국가와 연결될 때면 문화와 관행으로 표현된다. 우리가 아무리 빨리빨리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이 결코 용인할 리 없다. 밤낮을 잊고 제품·서비스 개발에 매진하는 우리 기업인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김준배 벤처과학부 차장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