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12월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는 각각 `방송콘텐츠 진흥 종합계획(5642억원)`과 `방송영상산업 진흥 5개년 계획(6546억원)`을 발표했다.
방통위와 문화부의 목표가 비슷해 대동소이한 사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정책 갈등과 예산 낭비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했다.
당시 천정배 민주당 의원은 방송영상산업진흥사업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비전과 정책 수립, 업무 체계의 일원화를 촉구했다.
방통위와 문화부의 업무 중복은 방송영상 콘텐츠 자체의 애매한 영역 구분에서 비롯됐지만 정부 조직 개편 당시 명확한 교통정리를 하지 못한 게 근본 원인이다.
조직개편 첫 해인 2008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방통위와 문화부는 콘텐츠 진흥 관련 예산 322억원을 중복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조직 개편 당시 제기된 방통위와 문화부의 콘텐츠 업무중복 문제가 현실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 같은 분산 체제는 현대 행정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고객 서비스와도 배치된다는 평가다.
정부가 창구를 일원화하는 목적은 정부 업무 수행의 효율화 및 일관성 유지뿐만 아니라 고객 서비스 간소화를 통한 고객 만족도 향상에 있다.
이런 점에서 정책 결정 및 집행 기능의 분산은 심각한 고객 혼선과 시간·비용 증가를 유발한다.
또 새로운 사건과 상황이 발생하면 소관 부처가 불분명, 소비자와 민원인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이후 콘텐츠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 지속되자 방송 콘텐츠 진흥 및 지원을 위한 단일화된 정책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방송콘텐츠사업자들은 “소관 부처가 나뉘어 있다 보니 부처간 갈등 탓에 정책 결정이 느려지는 일이 잦았다”고 지적했다. 또 “콘텐츠 관련 부처가 통합돼야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할 것”이라며 콘텐츠 진흥 부처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나름의 대안도 내놓았다.
방통위와 문화부를 결합하자는 안은 이 같은 여론을 반영해 최근 새롭게 부상하는 거버넌스 개편안이다. 콘텐츠(C), 플랫폼(P), 네트워크(N), 단말기(D)의 융합이라 스마트 시대 트렌드와도 크게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서 콘텐츠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상황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방통위와 문화부 결합안은 최근 ICT 독임부처 설립 논의에 대한 지식경제부, 행정안전부 등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나온 일종의 차선책이라는 지적도 많다.
지경부와 행안부의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스마트 생태계에 맞춘 정책을 개발할 수 있는 `제3의 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개편안은 ICT 독임부처가 갖는 정책 장점을 거의 계승할 수 있다. 콘텐츠와 네트워크, 플랫폼을 아우르는 정책 개발과 집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지경부와 행안부에 있는 단말산업이나 정보화 사업은 기존 체제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그동안 분산형 거버넌스에서 빚어진 업무 중복이 부분적으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
방통위와 문화부를 합치게 되면 비ICT와의 조화 문제도 제기된다. 문화부는 디지털콘텐츠뿐만 아니라 체육, 관광, 종교, 스포츠 등 다양한 소관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순수 문화예술 분야는 콘텐츠 산업의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시너지가 기대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 때문에 방통위와 문화부 결합안이 현실화하면 비ICT 분야 거버넌스 문제가 연쇄적으로 불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방통위와 문화부를 결합할 때 규제 부문에 대한 세부적인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정치적인 측면이 강한 방송을 비롯한 콘텐츠 심의는 의사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으므로 규제를 분리해 부처내 별도 위원회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장점과 단점이 교차하는 방통위와 문화부 결합안에 대해 ICT산업계에서는 갈수록 콘텐츠가 ICT 플랫폼과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는 만큼 상당히 우호적인 시각이다. ICT 독임부처가 정부부처간 알력다툼으로 좌절되더라도 최소한 콘텐츠와 네트워크, 플랫폼을 아우르는 정부 조직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형남 숙명여대 교수는 “콘텐츠라는 말은 인터넷의 등장 이후에 나온 용어로, 콘텐츠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분리돼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콘텐츠가 문화의 영역이 아니라 ICT 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문 교수는 “CPND 융합이라는 시대적 조류를 염두에 두면서도 규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 체제보다 진흥 기능이 보다 강조되는 체제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차기정부 ICT 거버넌스의 핵심이 CPND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총괄적인 정책과 미래 비전제시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방통위와 문화부 결합안은 사실상 미완의 차선책”이라며 “한국 스마트 산업의 미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부 알력다툼 때문에 차선책을 택하는 것보다 ICT 전담부처라는 최선책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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