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순환정전 구식 매뉴얼로 9·15 악몽 못 막는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여름피크로 한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치솟고 있다. 전력당국과 전력 공기업은 전력수급에 벌써 살얼음판이다. 이른 더위가 장기화하면서 지난해 9·15 순환정전 사태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력수급 위기 상황 시 단계별로 전기를 차단하는 순환정전 매뉴얼이 지난해와 달라진 게 없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정전사태 때 전력거래소는 자체 판단으로 순환정전 조치를 취해 과잉대응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전력거래소는 단전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고 지역별 순환정전을 무차별 실행했다. 일반 주택은 예고 없이 전력을 차단할 수 있지만 고층아파트와 종합병원·상업업무용 건물까지 포함했다.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 시민들은 30여분을 무서움에 떨었고 신호등까지 꺼져 자칫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도 연출됐다.

순환정전 매뉴얼은 국민경제에 미치는 피해와 공공이익 등을 고려해 전력중단 순위를 정해 놓고 있다. 예컨대 군대·통신·종합병원 등은 제외대상이다. 좀 더 세분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국민안전과 국가안보에 직결된 매뉴얼이 아직도 연구용역 수준에 머물고 있다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정부는 지난 9·15 정전사태 이후 순환정전 매뉴얼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 작업을 거쳐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서둘러야 한다.

물론 피해 보상과 단전작업의 성격상 순환정전 순위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한쪽을 차단하자니 다른 한쪽의 반발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비용문제도 고민이다. 순환정전을 피할 수 없다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안보에 가장 피해가 적은 분야부터 매뉴얼을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전기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연결하는 핵심동맥이다. 잘못된 위기 대응체계로 지난해 9·15 순환정전과 같은 악몽이 재현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