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블랙아웃, 소비자 탓으로만 돌릴수 있을까

100여년 만이다. 최악의 가뭄에 더위까지 절정에 달했다. 전기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전력 블랙아웃을 걱정할 처지다. 때마침 블랙아웃에 대비한 위기대응 비상훈련까지 해야 했다. 전력예비율을 감안한 여름휴가 지침도 내려졌다.

통신사들이라고 다를까. 데이터 사용량이 사상 최고치를 향한다. 세계적으로도 최고 수준이다. 데이터 무제한요금제에서부터 음성 무료통화 서비스까지 등장하면서 데이터 블랙아웃 위험이 높아졌다.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다. 하나 더 있다.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요와 공급의 문제를 소비자 탓으로만 돌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과잉소비를 하면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블랙아웃의 위험이 `아무 생각 없이 펑펑 쓰는` 소비자들의 소비행태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전력소비량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8833㎾h)가 소득 수준이 2배 이상인 일본(7818㎾h)이나 프랑스(7512㎾h), 독일(7148㎾h), 영국(5607㎾h)보다 더 많이 쓰고 있다. 데이터 사용량도 일본이나 미국, 영국에 비해 2~4배 높다.

요금을 올리거나 공급량을 조절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전자는 소비와 공급을 가격으로 조절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아예 인위적으로 통제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왜 그럴까. 요금구조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원가에 못 미칠 정도로 싼 요금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원가회수율이 86.1%라는 것은 요금이 원가에 미달함을 뜻한다. ㎾h당 전기요금도 우리나라가 0.072달러로 일본의 0.173달러, 영국의 0.158달러와 비교해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데이터소비량 또한 같은 이유를 든다. 유선인터넷은 일본을 제외한 미·영·프에 비해 가장 낮은 0.2~4.9달러 수준이다.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시장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그렇다. 공급이 달리는데 가격은 요지부동인 기현상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정책당국이 시장을 왜곡시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책당국의 입장은 명확하다. 공급을 늘리면서 시장을 확대하는 정부주도형 정책을 바꿀 이유는 아직 없다. 시장 활성화를 위한 기본 인프라라는 얘기다. 기간산업의 특성 탓이 크다. 정치공학적인 문제도 물론 작용한다.

기간산업의 특성을 간과한 탓일까. 달리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기간산업은 때에 따라서는 보편적 서비스 개념도 흡수해야 한다. 시장에 맡기는 게 기본이긴 하지만 때로는 정부의 직접 역할도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초과 수요로 인한 공급량 부족을 소비자 문제로만 해결하겠다는 것은 산업 특성상 앞뒤가 맞지 않다.

데이터요금을 예로 들어보자. 무료 mVoIP의 문제는 트래픽이 아니라 통신사의 주수익원인 음성통화 수익을 갉아먹는다는 데 있다. 적어도 현재의 블랙아웃 우려의 주범이 음성통화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대체 비즈니스 모델의 부재에 따른 공포가 더 큰 원인이다. 전력 역시 가정용이 아니라 산업용, 업무용 비중이 더 크다는 점에서 공급의 문제로 풀어가는 것이 합당하다.

선택적 문제일 것이다. 현재로선 시장 자율성을 인정해 주면서 시간을 갖고 대안을 모색하라는 한시적 처방이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걸 소비자 탓으로만 돌리면서 요금 문제로만 풀어가려는 것은 진정한 해법이 아니다. 산업 활성화나 대국민 서비스를 염두에 둔다면 장기적 공급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