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기인의 삶과 꿈]김진현 KIST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 책임연구원

독일에서 학위를 했다. 미국 유학에 익숙한 사람은 독일을 선택한 나를 의아해했다. 독일어 공부도 없이 무작정 베를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이델베르그를 방문해 막스플랑크 연구소 문을 두드렸다. 예약이나 사전 통보 없이 박사학위 정보를 얻고자 찾아온 나를 비서가 저지했다.

[여성과기인의 삶과 꿈]김진현 KIST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 책임연구원

내 지도교수가 된 피터가 이를 보게 됐다. 피터는 무식인지, 용기인지 그렇게 연구소를 찾은 작은 한국 여학생을 신기하게 여겼다.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점심시간 이후에 오면 실험실을 보여 주마`라고 말했다. 난 실험실을 돌아보고 이력서를 보내라는 피터의 제안을 따라 그곳에 지원했다. 내가 가장 재미있고 뜻 깊은 박사학위를 그곳에서 하게 됐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내가 학생을 뽑는 위치가 됐다. 피터가 그러했듯 지금 내 작은 연구실을 용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학생 학력 기록보다는 그들의 과학 애정과 잠재력을 보고 싶다. 그들의 열정과 잠재력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한다.

난 뇌를 연구한다. 뇌는 사고 능력· 감정· 판단· 학습· 기억· 운동 능력 등에 관련이 있다. 복잡한 뇌가 인간 감정과 행동에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신경 연결망 지도를 구축하며 밝히는 게 내 역할이다. 그리고 난 사람의, 특히 학생 행동과 생각을 뇌 연구 관점에서도 관찰한다.

우리 학생의 역량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창의력이나 기존의 틀을 벗어나 미래를 향하는 용기가 많이 숨어 있는 듯하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구별이 모호하고 사고의 일률화로 개인적 기발한 생각들이 우대받지 못한다. 여성 과기인이니 여성 전문인이니 하는 `여성`이란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 시기는 지났다. 실제로 최근 많은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수식어 앞이 아니라 한 전문인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지금은 여성 사회지위 획득에 많은 공헌을 한 여러 `신여성`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남성 우대의 유교적 문화와 불공평한 사회 제도가 역사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현대 사회는 급속히 변했다. 한국의 10년은 유럽의 100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역동성 면에서 세계가 주목한다. 아직도 미흡한 부분도 있지만 놀랍게 발전한 우리나라는 14여 년 동안 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또 다른 새로운 나라다.

우리 미래를 지나치리만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단, 아직도 우리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의 하나가 여성의 정신적 주체성이다. 여성으로서 교육의 동등한 기회와 대우를 받는 지금, 전문인으로서 필요한 창의력과 근본 인지능력을 키우기보다 수동적 자세로 훌륭한 `신여성`이 우리에게 준 풍요로움을 오히려 놓칠까 우려된다.

kimj@kis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