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정전상황을 전파하는 등 민방위훈련에 버금가는 대규모 소동을 체험했다. 6월 21일 전국적으로 시행한 `정전대비 위기대응훈련`이다. 전쟁이 아닌 에너지 때문에 대규모 훈련을 한 건 처음이었을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국제사회에 큰 소리로 주장해 온 녹색성장의 끝자락이 정전방지 훈련이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유력 야당후보는 핵심 국정과제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공약한 바 있다. 과연 원전은 안전한가. 혹은 신재생에너지는 우리나라의 안정적 에너지공급을 담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다음 정권에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나라 에너지정책 기본 기조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불가피하다. 핵심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이슈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전력 및 에너지 사용 밀도가 가장 높다. 같은 제조업 국가인 일본은 5위에 불과하다. 우리의 고밀도 에너지인프라는 지난해 9·15정전사태를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우월한 제조업 국가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해당 산업의 혁신과 노력만이 아니다. 추가적인 에너지인프라 건설과 지원이 수반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 제조 산업은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가 부족해 공장운영이 어려웠던 심각한 상황에 처해 본 적 없다. 이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 전력망은 전국 단일망이다. 이용 효율성 측면에서는 탁월하지만 노후화에 포화상태까지 이르렀다. 단일망 이기 때문에 한 곳의 사고는 바로 전국단위로 전파되는 취약성도 심각하다. 이 때문에 정전사고의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이제는 제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고 일반 소비자에게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인프라 확충과 재건사업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전기요금 인상논의에서 산업계나 소비자는 전기요금 현실화에 동참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어 안타깝다. 인프라 확대를 위한 재원확보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파국에 대해 우리 국민과 산업계는 너무나도 인색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인프라 투자는 위축되고 있는 현실이다.
에너지는 국가경제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필수요소이자, 결코 붕괴시킬 수 없는 자산이다. 따라서 에너지인프라 포화 혹은 블랙아웃 위기는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는 전조이기도 하다. 만약 전국 단위 정전이 발생하면 우리나라는 그냥 `한방에 훅 간다` 지금 에너지인프라에 대한 투자 소홀이 한다면 앞으로 더 큰 비용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에너지 `안정`과 `안전`이라는 화두를 실천에 옮기려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해야 한다. 제한된 예산으로 보다 비용 효과적이고 전략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에너지 안정과 안전을 비용 효과적으로, 특히 기술혁신 기반으로 달성한다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녹색성장`이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실천적 녹색성장`은 `실패한 녹색성장`의 기반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위기상황에 강하다. 지난 정전대비 훈련에서 우리 스스로 놀랄 만큼 위기 극복 능력을 보여줬다. 짧게 주어진 시간에 약 500만㎾의 설비용량을 창출해 낸 것이다. IMF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태안기름유출사건 등 자발적인 봉사활동이 연상되는 것은 과도한 기대일까. 이젠 에너지인프라 위기를 모두가 공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자에 대한 의지 그리고 에너지요금 정상을 통한 재원확보가 절실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초기에 열광했던 녹색성장의 진정한 모습이다.김창섭 가천대학교 에너지IT학과 교수 cskim40718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