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정원 미달 사태로 산업 핵심이자 근간인 IT 인재가 바닥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전산학과 기피현상은 비단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전반의 현상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오래된 얘기라는 것이다. 도대체 왜 장기간 전산학 기피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지난해 건국대 `또래상담자`로 정보통신대 학우를 상담한 적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우는 인문계열에 입학했지만 취업 문제로 전산학을 복수 전공하고 있었고, 상담 내용은 부전공인 전산학의 부적응 문제였다. 그는 평소 자신이 생각했던 컴퓨터 이론과 실제로 배우는 전산학의 내용이 많이 달라 학업 적응이 힘들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과거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시절, 컴퓨터 프로그램이 그림판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림을 그리듯 쉽게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대학 입학 후 전공 수업에서 나는 알 수 없는 영어가 적힌 코드가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언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학문에 대해 두려움이 앞섰다.
이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전산관련 특수목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학생 대부분은 학과 수업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상담을 신청했던 그 학생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단지 주요 과목 성적을 위해 특정 과목만 공부한다. 단 몇 시간의 컴퓨터 수업시간은 몇 가지 응용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초 능력만을 배우거나 주요 과목을 위한 자습시간 정도로 이용될 뿐이다. 만약 이 시간에 학생들이 프로그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배우고 그래서 좀 더 이른 나이에 전산학을 접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내가 신입생 시절에 하던 고민도, 상담을 신청한 다중 전공학생이 했던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전산학 기피현상은 단지 교육 문제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미디어 매체로 인해 생겨난 전산학에 대한 오해가 전산학 기피현상을 가중시킨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전산학에 대한 실체 없는 오해가 존재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기업가,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극중에서 그려진다. 하지만 전산직에 종사하는 전문가는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 아주 드물게 조연 정도의 역할로 미디어에 소개된다. 대부분은 뚱뚱하고 게으른 캐릭터에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해커 역할이다. 혹자는 이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큰 오해를 일으킬까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전산학을 전공하는 나는 그러한 오해를 종종 실감하곤 한다.
평소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해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다. 활기차게 활동하는 내가 사람들에게 내 전공을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답을 한다. “활동을 열심히 해서 컴퓨터를 전공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사회에는 전산학에 대한 오해가 만연해 있다. 그것이 앞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청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생각하면 상당히 안타깝다. 전산학은 다른 어느 학문보다도 변화가 많은 학문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지식을 나누고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도 활동적이고 열정을 가진 사람이 전산을 다루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도 이런 전산학도로서 역량을 갖추기 위해 매일 전자신문을 구독하며 IT 최신 트렌드를 익히고 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세계 IT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이들 세 사람은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듯, 어릴 적 일상의 작은 경험이 계기가 돼 컴퓨터에 관심을 가졌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누구보다도 활동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IT강국에서 일어나는 전산학 기피현상, 국가적으로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이때에 교육과 미디어 매체에 질문하고 싶다. 우리 미래를 위해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전산학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지.
전효원 건국대 인터넷공학 4학년 kyowony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