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세종대왕과 함께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이순신 장군이다. 왜 여러 장군 가운데 이순신 장군이 더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일까. 다른 장군들은 아무리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어도 승리했다는 기록 외에 특별히 어떻게 이겼다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전쟁의 모든 과정을 `난중일기`에 남겼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차이다.
기업에 지식경영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지식경영`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루한 용어로 폄훼될 정도로 `일반화`됐지만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내에서도 지식경영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일찌감치 많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왔다. 기업에 유용한 업무 노하우 및 지식을 창출하고 확산하는 시스템으로 지식관리시스템(KMS)도 활발하게 구축했다. 하지만 시스템 구축과는 별개로 KMS에 지식을 올려 공유하는 직원들의 참여도를 높이는 것과 이를 통해 올라온 지식을 업무에 활용하는 내재화 작업은 또 다른 과제였다. 여전히 이러한 제안활동 활성화 및 내재화는 기업들의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 최근에는 퇴직자 증가에 따른 이들의 지식 전수 방안 등이 KM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자발적 참여·제대로 된 보상`이 KM 활성화 핵심=직원들의 지식경영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한 해답은 없다. 하지만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성과를 거둔 기업들도 많다.
지식경영 활성화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본 기업 및 기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안하면 안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다. 이는 곧 최고경영자(CEO)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스코ICT의 경우 초기 활성화를 위해 학습동아리(CoP) 활동으로 유연하게 지식을 공유하는 데 중점을 뒀다. 강제적 CAO(CoP Action Observer) 활동으로 댓글이나 자문 등의 피드백 활동을 활발하게 하게 했다. 주로 직책보임자들을 CAO로 지정했다. 즉, 일반 직원들은 규제를 하지 않은 반면, CAO를 대상으로 관리를 한 셈이다. CAO를 대상으로 모니터링하고 평가를 함으로써 CoP 활성화의 핵심이 되도록 했다. 이들은 피드백 활동실적을 CAO의 핵심성과지표(KPI)에도 포함시켰다.
이와 함께 많은 기업들이 KMS의 활성화를 위해 마일리지제도를 활용했다. 하지만 마일리지 제도는 사실상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일리지에 의한 금전적 보상은 단기적 효과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역효과였다는 게 기업 담당자들의 설명이다. 대한생명은 마일리지 제도와 비슷한 지식거래제를 도입해 성과를 톡톡히 봤다. 이를 통해 지식이 곧 돈이라는 인식을 직원들에게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사이버머니를 얻으려고 가치없는 지식을 올리는 현상도 있었지만 가치없는 지식을 올리면 평판이 내려가서 사람들이 조회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김태균 대한생명 차장은 “직원들 대부분 사이버머니를 현금으로 보상하려 하기 보다 다른 지식을 조회하는 데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금전적 보상은 오히려 큰 의미가 없었다”고 말했다.
보상을 하려면 정말 `보상다운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까지는 지식 한 건당 아주 미미한 수준의 보상에 그쳤다. 가령 직원들이 아파트 평수를 넓힐 수 있을만한 수준의 보상금을 내걸고 연례적 경진대회를 하거나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이 상금받는 사람이 극소수라고 해도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지식 관리자의 역할 중요=지식경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식 관리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지식의 양을 늘리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지식의 품질을 높이면서 양도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지식의 품질 제고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지식을 등록하고 제대로 평가하는지를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것이 지식관리자의 핵심 역할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식관리자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기 때문에 모든 지식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
포스코ICT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품평회 활동을 별도로 전개했다.
한복규 포스코ICT 팀장은 “지식의 양이 많아 담당자가 다 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업부장이 해당 사업부의 지식을 보증하는 지식품평회 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지식관리 부서에서는 품평회 활동 결과를 보고 받고 샘플링 방식으로 모니터링하도록 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어떻게 관리할지 여러 방안을 놓고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식경영 보직의 잘못된 편견도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김효근 이화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식경영 보직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기업의 핵심 임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식경영부서를 거쳐 조직의 지식구조를 통찰하는 경험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식경영의 성과도 가시화해야 한다. 어떤 프로젝트든 성과의 가시화는 중요하지만 지식경영에 있어서는 더욱 필수적인 사안이다.
한국도로공사는 지식활동을 시각화했다. 개인별 상대적 활동수준지표를 시각화해 제공해 줌으로써 상대적 비교와 함께 분발의 계기를 제공했다. 참여 독려 및 변화관리의 한 비법이었던 셈이다.
◇새롭게 대두된 과제=최근 기업들이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스마트 업무 환경을 구현하면서 모바일로 지식을 공유·제공하는 데 따른 보안 위험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많은 기업들은 등급에 따라 접근제어 권한관리를 하고 있다. 또한 원본 데이터는 전사콘텐츠관리(ECM) 시스템에 두고 KMS는 링크만 제공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출력이나 복사가 안되도록 제한하는 방안도 채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아무리 해도 뚫으려면 뚫리는 게 보안이기 때문에 결국 직원들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디지털저작권관리(DRM) 솔루션을 적용했더라도 모바일로 보고서를 조회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직원을 믿지 않으면 사실상 완벽한 해답은 없다”고 털어놨다.
최근 기업들의 지식 경영에서 새롭게 떠오른 화두는 퇴직자들의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퇴직자의 지식 보존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성공적인 사례는 드물다.
김효근 교수는 “조선시대에는 자신의 지식을 써서 남기는 게 명예였고, 관직을 떠나면서 명집 하나 안 남기면 불명예스럽게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러한 문화가 아니다”면서 “퇴직자들의 지식 보존도 결국은 기업 문화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업무지식을 후계자에게 기록으로 남기게 하는 핵심요소는 `신뢰`”라고 강조하며 “이러한 신뢰 문화와 함께 퇴직자들이 명예롭게 퇴직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기업이 마련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