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훈의 디지털 확대경]나의 경쟁상대는 누구?

4년 전 파이낸셜타임스는 닌텐도의 1인당 이익이 160만달러(약 18억2000만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구글보다도 2.5배 이상이나 높다. 닌텐도는 2007년에만 매출 1조6274억엔(약 23조8250억원), 당기순이익 2753억엔(약 3조922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그해 팔린 게임기는 4892만대, 게임은 3억522만개에 달한다.

당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닌텐도의 성공비결을 막대한 연구개발비, 높은 투자 효율성, 치킨게임 금지 전략 등으로 요약했다. 충고도 잊지 않았다. 파괴력 있는 창조적 기술기업·제품이 등장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으니 방심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어떤 기업도 영원히 승승장구할 수 없다는 조언과 함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매출은 지난해 6476억엔으로 급감했고, 이익은 적자로 돌아서 432억엔의 순손실을 봤다. 31년만의 적자다. 최고 절정기에 있던 닌텐도는 경쟁상대를 `게임에 대한 무관심`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수년 만에 그 분석은 빗나갔다. 회사는 부진원인으로 엔고현상을 꼽으며 전략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문가는 그 원인을 경쟁상대에 대한 오판 즉, 스마트폰에 대한 대응력 부재로 본다.

한 때 나이키의 경쟁상대는 닌텐도라는 말이 화제가 됐다. 1990년대 중반 5년 연속 3배 이상의 성장세를 구가하던 세계 제일 스포츠용품 업체 나이키는 수년 후 성장률이 둔화되자 원인은 분석했다. 원인은 용돈의 60%를 스포츠용품 구입에 사용하던 주고객 청소년층이 아웃도어 스포츠가 아닌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 그래서 나이키는 경쟁상대를 타 스포츠용품 회사가 아닌 닌텐도, 소니 등 게임업체로 규정했다. 그리고는 애플과 손잡고 아이팟 LCD창에 운동량이 기록되는 센서장착 운동화 `나이키 아이팟 센서`를 개발했다.

경쟁상대는 뜻하지 않은 곳에 있다. 소주의 경쟁상대는 드라마다.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로 저녁시간 안방을 장악하면 저녁 술자리 횟수는 줄어들 테고, 그만큼 소주 판매량은 감소하게 된다. 3년 전 조반니 비시냐니 국제항공운송협회 회장은 항공사의 경쟁자로 영상회의를 지목했다. 영상회의 시스템이 보급된 이후 기업 업무관행이 바뀌어 출장 횟수가 줄어든 탓이다.

2년 전 칸광고제 아웃도어부문에서 은상을 수상한 제임스레디 맥주의 쿠폰 캠페인은 바뀐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국 맥주회사 제임스레디는 맥주 소비를 늘릴 방안으로 옥외광고판 쿠폰 마케팅을 고안했다. 자사 맥주 광고판에 표시된 쿠폰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오면 할인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눈에 띄는 대목은 가격할인 대상이 맥주가 아닌 그 지역 미용실, 세탁소 등 맥주소비와 무관한 곳이라는 점이다.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다면 아낀 돈 만큼 맥주를 더 마실 거라는 입체적 발상이 적용됐다.

경쟁상대는 동종업계뿐 아니라 이종산업에도 널려 있다는 `초강력 경쟁사회(Hyper Competition Society)`, 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액체사회(Liquid Society)`로 이 사회가 급격히 진화화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제는 시장점유율의 문제를 넘어 고객의 시간점유율, 고객지출 점유율을 누가 더 지능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성공의 열쇠가 되는 시대다.

내 경쟁상대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면, 또 그에 맞는 변화와 변신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세계 제일의 글로벌 기업도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다. 내가 경쟁자로 삼은 대상이 진상(眞像)인지 아니면 허상(虛像)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손무의 병법처럼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가능하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