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PC제조업체 레노버의 새로운 공장이 가동을 시작했다. 공장 내에는 로봇 팔이 데스크톱PC와 서버를 조립하고 파란 모자를 쓴 직원들은 일렬로 앉아 검수를 한다. 이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은 하루 2만5000여개. 여느 공장과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지만 주목할 것은 이 공장이 레노버 본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베이징 외곽에 있다는 점이다. 근로자도 모두 레노버 직원이다. 레노버는 중국을 포함, 해외에서 가동 중인 8개 공장과 근로자 모두 자사 소속으로 뒀다. 애플, HP 등 경쟁사들이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아웃소싱을 늘리고 있는 것과 대조적 행보다.
레노버가 이처럼 직접 생산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 위엔칭 레노버 회장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가진 인터뷰에서 “PC를 파는 것은 신선한 과일을 파는 것과 같다”는 나름의 경영철학을 밝혔다. IT업계 혁신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면서 고객 수요를 즉각 파악하고 신속하게 생산라인을 돌려 재고를 조정하면서 공급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는 주장이다. 즉, 빠른 공급 체인이 핵심 경쟁력이 됐다.
레노버의 이 같은 전략은 지난해 태국 홍수로 인한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공급 부족 사태 당시 빛을 발했다. 빠른 의사결정과 집행을 통해 수익이 많이 남는 모델 위주로 생산라인을 재편하고 나머지는 가동을 중단했다. 직원들이 본사 소속인 만큼 안정감을 갖고 회사의 결정을 따라줬다. 덕분에 레노버는 지난해 글로벌 5대 PC업체 중 가장 큰 성장세를 보였다.
이 전략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 회장은 2004년 레노버가 IBM PC사업부를 인수한 이후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자 중국 이외 지역으로 판매 루트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IBM PC브랜드 `싱크패드(Thinkpad)`로 러시아는 물론이고 인도까지 공격적으로 파고들었다. 제리 스미스 레노버 공급체인담당 부회장은 비용절감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정답은 중국에서 PC 등 완제품 조립생산은 물론이고 디스플레이, 서버까지 수직계열화를 통해 생산하는 것. 양 회장과 스미스 부회장은 내수 제조 비율을 20%에서 50%까지 끌어올렸다. 스미스 부회장은 “3년 전에는 모든 업체들이 아웃소싱을 하려고 했던 상황이었다”며 “하지만 우리는 경쟁자와 다른 방법으로 전략을 짜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중국에서 직접 생산을 시작하면 원가를 낮출 수 있는데다 품질 관리가 쉽고 소비자에게 애프터서비스(AS)까지 토털로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략을 수립한 레노버는 2009년 당시 2억5000만달러 가까이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3년 만인 올해 4억7300만달러 당기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레노버에 남은 과제는 `제품`이다. 레노버는 올해 말 인터넷TV, 스마트폰 등 새로운 제품을 속속 내놓을 예정이다. 마케팅전략업체 울프그룹아시아의 데이비드 울프 CEO는 “레노버에 주어진 과제는 단지 좋은 제품이 아니라 참을 수 없이 갖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