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모바일투표와 `나가수2`](https://img.etnews.com/photonews/1207/306296_20120712151803_225_0001.jpg)
방학이다. 그러나 학기가 끝나자마자 성적에 대한 여러 학생의 하소연을 이메일로 접하며 조금은 찜찜하다. 팀 발표 평가방법에 불만이 많았다. 학생들 스스로 우수 팀을 뽑는 이른바 `나가수`식 평가가 사실상 친한 친구끼리의 인기투표였다는 것이다. 차라리 나 혼자 채점할 걸, 이제 와 후회된다.
사실 뭘 평가하든, 공정하기란 쉽지 않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나가수2`가 매주 10만명 이상 동참해 온 재택평가단의 문자투표를 없애고 갑자기 현장과 모니터 평가단 각 500명으로 평가방식을 변경한 것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이었다. 경연 무대의 감동보다 가수의 인지도나 인기를 반영한 문자투표, 심지어는 팬클럽들의 역투표 의혹 때문이었다니 말이다.
대통령 선거쯤 되면 오죽하랴! 아닌 게 아니라 대선을 앞두고 후보경선방식, 특히 민주통합당의 모바일투표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국민 참여도 좋고 경선의 흥행도 좋지만 직접·비밀투표의 원칙을 훼손함은 물론이요 민심 왜곡과 동원선거·부정투표의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당정치에서 `나쁜 의미에서의 혁명적 변화`라는 비판도 등장했다.
그러나 바야흐로 디지털시대다. 모바일 가입자가 5000만명이 넘는 IT코리아 아닌가. 그래서 모바일로 표출되는 집단지성을 존중하는 것은 시대적 명제라는 논리는 제법 설득력이 있다. 새로운 시도는 엄두도 못 내는 새누리당의 아날로그적 구태가 오히려 문제라는 진단도 있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 결론부터 밝히자면, 나는 `공직자 선출`을 위한 모바일투표는 과욕이요 시기상조라고 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무엇보다도 정치권의 IT 학문에 대한 무지가 아쉽다.
첫째, IT 철학의 빈곤이 안타깝다. IT의 순기능만을 강조하며 역기능의 폐해를 예견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현재는 고작 전자식 투·개표 수준이거늘 성급하게 전자정부의 완성단계인 모바일투표라니! 이곳저곳 반복되는 모험들이 위험천만해 보인다.
둘째, IT 통계학의 원칙을 모른다. 정치인 팬클럽에서 동원한 선거인단, 모바일 기기와 친숙한 시민으로 편중된 표본이 어찌 민심을 대변하겠는가. 표본 수가 수백만명이어도 마찬가지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굳이 민심을 파악하려면 여론조사가 더 과학적인 방법이리라.
셋째, IT 공학의 한계가 엄존한다. IT시스템의 품질은 확보하기도 평가하기도 힘들다. 이론적으로는 소프트웨어와 통신 오류가 없는 100% 완벽한 시스템은 불가능하다. 국가정보화사업에 시스템감리를 의무화한 것도 그 까닭이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모바일 투·개표시스템의 `책임감리`는 누가 맡을까. 문제점이 투·개표 후 발견되면 그땐 어찌할꼬.
전자민주주의는 IT를 대의민주주의의 보완도구로 삼자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절대적 수단으로 IT를 활용하려면 먼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책임지고 그 환경을 만들어줘야 맞다. 선관위 시스템도 해킹당하는 것이 현실인데, 정치권의 무리한 `IT 짝사랑`에 전문가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정치는 그토록 인기와 바람을 먹고사는 생물이던가. 지금이라도 흥행성에서 공정성으로 과감하게 유턴한 `나가수2`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나만큼은 다음 학기부터는 학부생들의 발표 평가에 대학원생 심사위원단을 활용하련다. 학점 경쟁이 치열할수록 교수는 절대적으로 공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주헌 한국외대 교수·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jhl10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