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터넷 검열 허용 법안 승인, 시민단체 `반발`

인터넷 검열이 없는 러시아에서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정보가 실린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이트는 제재가 가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정보 관련 업종 종사자들과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모든 인터넷 콘텐츠를 검열하려는 `꼼수`라며 비판했다.

12일 러시아 하원은 불법 콘텐츠를 갖춘 인터넷 사이트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제재를 가하는 내용을 담은 정보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어린이 포르노나 자살 및 마약 지식 사이트 등이 주된 단속 대상이다. 법안은 상원 심의와 대통령 서명을 거치면 공식 발효된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정부 산하 기관인 정보감독청이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정보가 실린 인터넷 사이트나 홈페이지 등을 발견하면 사이트 소유자나 운영자에게 먼저 삭제를 권고한다. 이들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해당 사이트를 블랙리스트에 올린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이트는 관계당국이 법원의 판결을 거치지 않고 폐쇄할 수 있다.

러시아 시민단체와 얀덱스 등 인터넷 기업들은 정부가 모든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검열을 시작하는 수순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법안에 명시된 `어린이들에게 유해한 정보`라는 표현이 너무 애매해 악용의 여지가 있다는 것. 결국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민주주의를 질식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명 반부패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는 “인터넷을 `좀비 박스`(러시아 정부가 통제하는 방송을 폄하하는 말)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러시아 정부의 인터넷 검열권을 강화하는 법안에 반발해 러시아어판을 10일 폐쇄했다. 블라디미르 메데이코 러시안 위키피디아 대표는 “무엇이 불법 콘텐츠이고, 누가 이 통제기구를 컨트롤 할지 불투명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 인터넷 사용 인구는 지난해 독일을 제치고 유럽 최대로 나타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도 세계 3위 수준이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