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떠오르는 전문부처주의

이번엔 행정학회다. 최근 학술대회에서다. 학회는 “현 정부는 대(大)부처주의에 입각해 정부기능을 통합했으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한계를 보였다”고 진단했다. 일부 부처는 아예 “통솔 범위의 과대화로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정부가 모 기관에 용역을 의뢰해 분석한 것과 일치한다. 현 정부 구조는 애초부터 잘못 설계된 것이고 행정 효율성 제고라는 조직 개편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성격 변화를 전제로 하는 대폭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단연 눈길을 끈다. 차기 정부는 전문성에 기초해 소관 기능의 범위를 적정하게 담당하는 전문부처주의가 답이라는 대목이다. 대부처주의의 실패를 전제로 차기 정부는 전문부처주의를 선택하고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신 분야별 관계장관회의를 활성화하고 부총리 또는 선임장관이 부처 간의 미시적 정책 조정을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통상산업부의 개편과 에너지자원개발청의 신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의 부활, 국가미래전략위원회의 신설 등이 눈에 들어온다.

한번쯤 고려할 만하다. 행정학회뿐만이 아니다. 이미 한국방송학회,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IT학술단체총연합회, 한국디지털정책학회 등 수천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대표 학회장들 역시 전문부처주의를 바탕으로 한 부처 재설계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대부처주의가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현실을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노키아가 불과 2년 만에 추락한 것을 보라. 소니·필립스의 쇠퇴와 코닥의 몰락은 상상을 초월한 대사건이다. `명텐도` 운운했던 닌텐도마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기업 흥망성쇠가 분초 단위로 갈리는 현실에서 대부처주의가 갖는 정책적 함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장점으로 여겨졌던 효율성의 상실이다.

전문부처주의가 대안으로 여겨지는 배경이다. 24시간 관련 업무를 고민하는 장관을 두면 급속하게 변화하는 산업 트렌드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고 관련 국가와의 협력도 유기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 자원빈국인 우리나라 같은 국가에서 미·일·중·러에 대항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적합하다. 미국식 신자유주의나 중국식 국가주의와도 차별성이 있다.

부처 간 기계적 통합을 주창했던 대부처주의자들의 논리가 옹색하게 들리는 이유다.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와 맥락이 일부 닿았다. 옹호론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어떤가. 대기업의 낙수효과를 명분으로 온갖 특혜를 줬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했다. 자본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자들의 탐욕이 결국 미국과 유럽 국가의 위기를 초래했다. 기득권의 공고화, 금융자본 이해관계의 합목적성이 성과라면 성과다.

반향이 컸다. 평가가 엇갈리기는 하지만 그동안 행정학회의 연구안은 실제 정부조직 개편 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만큼 무게감이 남다르다. 참여하는 연구진도 서울대, 충북대, 수원대 등 전국의 행정학자가 망라됐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등 다양한 연구기관의 연구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기능의 만능주의는 물론 경계해야 한다. 부처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논리는 아니라는 얘기다.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효율성을 기준으로 해야 할 일이지 시장경제의 원칙마저 포기하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고 했던가. 현재의 비효율을 놔두고 차선도 아닌 차악을 선택하자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