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낙하산 고질병 또 도지나

[박승정의 어울통신]낙하산 고질병 또 도지나

권력 주변의 정권 말 풍경은 흔히 두 가지로 요약된다. 바로 한자리 꿰차고 나갈 것인지와 한몫 챙길 것인지다. 전자는 흡사 `난파선`에서 탈출하려는 그룹으로, 임기를 보장받는 산하기관이나 협회·단체를 선호한다. 후자는 이권 개입과 막판 이해관계에 몰입하는 그룹이다.

여야를 통틀어 여건상 말 갈아타기는 여의치 않다. `순장조`로 불리는 가신그룹은 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이른바 `낙하산`이 등장하는 이유다. 낙하산은 사람을 채용할 때 권력기관이나 높은 사람의 은밀한 지원과 힘을 빌리는 것을 지칭한다. 바람의 힘을 빌려 목표 지역에 용이하게 착지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낙하산 착지 지점은 정부 산하기관이나 협회·단체가 용이하다. 임기도 정해졌다. 정권이 바뀌면 어찌될지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다. 보수나 예우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권에도 재량껏(?) 개입할 수 있다.

철학 없이 이해관계로 뭉친 권력일수록 더욱 심하다. 오직 개인의 이해와 기득권에 연연하는 탓이다. 우리 주변의 일반 기업 역시 나름의 낙하산 논란이 얼마나 많은가. 정권 말 풍경을 압축하는 단어는, 그래서 권력 무상이다.

또다시, 어김없이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다. 한국석유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이 대표적이다. 방법론도 있다. 특정인을 밀다가 안 되면 재공모하고, 그래도 안 되면 무산시킨다. 권력 내 힘의 역학 관계에 따른 법칙이다.

정보기술(IT)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때마침 정보통신산업진흥원 자리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정권 말까지 연임하는 듯했지만 갑자기 권력 주변의 `낙하산` 논란이 번졌다. 정권 교체를 불과 5~6개월 앞둔 상황이다. 거론된 인사는 전문가도 아니고 경력도 전무하다. 단지 청와대 출신이란 점 하나다.

낙하산 인사의 폐해는 상상 이상이다. 전문가거나 경력이 전무하면 더욱 심각하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한 기관장을 보라. 그는 취임 이후 직원들과 내내 불화를 빚었다. 자질 논란도 일었다. 급기야 성추행 논란을 빚고 사임했다. 법률적 판단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사임 자체로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어디 이곳만 그러하겠는가. 권좌 지근거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문성과 경력이 전무한데도 원장으로 내려앉은 곳이 여럿이다. 방통위 산하 또다른 한 기관은 낙하산 인사로 직원들 간 불협화음 중이다. 감독기관도 안중에 없다.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공기업·기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정권마다 낙하산 인사를 되풀이하다 보니 희망보다는 절망에 압도당한다.

급기야 `낙하산 근절` 법안까지 발의됐다. 방송사 사장 선임 건 때문에 나온 것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유야 어쨌든 공정성 시비와 낙하산 논란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그렇다면 답은 없는 것일까. 대통령제인 서구 어느 국가는 아예 정권이 바뀌면 비워줘야 할 자리를 정해놓는다. 이른바 `전리품` 차원이다. 그렇더라도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는 예외로 둔다.

우리는 어떤가. 혹시라도 여야 모두 `낙하산은 필요악`이라는 후진적 등식이 성립돼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전문기관까지 정권의 전리품쯤으로 생각하는 것이 국가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될지 고민해 보자는 얘기다.

전문화 시대다.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영역이 전문가에 의해 좌우된다. `낙하산`이 가장 시대착오적인 용어로 인식되는 이유다. 정치가 모든 걸 좌우하고 낙하산이 아직도 횡행하는 후진적 시스템, 이제 털어낼 때도 됐다.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