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 표준·인증기관들이 협력, 미국·유럽 등 선진국 주도의 표준·시험인증 시장 구도재편에 나선다. 기술·노하우를 보유한 국내 기관과 자본·시장을 보유한 중국 기관이 어떤 상승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23일 정부 및 업계에 따르면 자국 표준·시험인증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중국 기관들은 고부가 시장 진입 및 해외 진출을 위해 국내 기관에 잇따라 러브콜을 보냈다.
국내 기관들도 중국과 협력이 선진국 주도 표준·시험인증 시장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 협력에 적극적이다.
국가표준기구인 한국기술표준원은 최근 중국의 대표적 표준기관인 중국국가질량감독검역총국(AQSIQ)·중국표준화관리위원회(SAC) 등과 협력 수준을 한층 강화했다. 지금까지 기술 교류 및 정보 교환 수준에 머물던 협력 관계가 지엽적인 기술 협력이 아닌 정책 부문 협력으로 진전된 것이다. 특히 기표원과 중국 기관은 지난 4월 일본 기관과 함께 재난관리·스마트그리드 등에 관한 공통 표준을 마련하기로 국장급에서 전격 합의했다. 표준 관련 정책 연구 수행뿐 아니라 실무자 연구그룹도 운영하기로 했다.
시험인증기관인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은 중국 기관과 합작해 현지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KTR가 IT·에너지·조선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보유한 점을 높이 평가해 중국 기관이 먼저 합작사 설립을 제안했다. KTR가 기술과 시험인증 매뉴얼을 제공하고, 중국 기관이 자본을 대는 형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지난해 7월 중국 중국과학기술발전전략연구원(CASTED)·중국과학기술발전전략연구원(NCSTE)과 잇달아 표준 및 인증기술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양국 기관은 과학기술 및 산업 발전 분야에서 적극 협력하고, 시장 동향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기로 했다. 향후 산기평은 연구원 파견·합동세미나·공동연구 등 여러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한중 양국 기관이 손을 잡은 것은 SGS·BEV 등 미국·유럽계 글로벌 시험인증 기관이 구축한 철옹성을 뚫기 위해서다. 중국 기관들은 자국 산업 성장에 힘입어 규모 면에서는 급성장했지만, 기술 및 노하우가 부족해 고부가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에 국내 기관들은 기술은 있지만 시장 규모나 해외 네트워크 부문에서 취약한 편이다. 서로에 가장 이상적인 파트너인 셈이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국내 시험인증 시장의 절반 이상을 외국계가 장악하고 있어 해외 진출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국내 기관이 많다”면서 “중국 기관과 손을 잡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지만, 반대로 기술과 노하우를 뺏길 수 있는 위험도 상존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