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 열도를 뒤흔든 원전 사고를 놓고 인재(人災) 논란이 뜨겁다. 일본 정부가 꾸린 사고조사검증위원회는 23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1년여에 걸쳐 조사를 펼쳤지만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 지진 진동으로 원자로 내부가 손상을 입은 것이 사고 원인으로 의심되지만 방사능 누출로 현장 답사가 어려워 단정할 수 없다며 `대충` 넘어갔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다는 식이다.
앞서 내놓은 예비 보고서는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미흡한 대비를 사고를 크게 키운 원인으로 꼽았다. 인재라는 표현도 이때 나왔다. 최종 보고서는 `인재`라는 단어를 삭제한 채 모호한 결론만 나열했다. 특히 도쿄전력에 사고 원인 규명이나 재발 방지 노력이 부족하다고 질책했지만 직접적인 책임은 묻지 않았다. 태도는 괘씸하지만 면죄부는 주겠다는 뜻이다.
여론은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놓은 정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일본 정부는 시민단체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력난을 명분으로 내세워 중단했던 원전 일부를 최근 다시 가동했다. 원전 사고 원인이 명백한 인재로 밝혀지면 완벽한 안전 대책이 세워질 때까지 원전을 다시 멈춰야 할 수도 있다. 최종 보고서는 원전 중단으로 전력난이 다시 가중될 것을 우려한 정부가 내놓은 회피성 꼼수라는 비판을 받았다.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는 측은 이번 조사 결과를 `정책적 인재`로 규정했다.
인재는 옆 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수개월 전 정전 사태로 가동을 멈췄던 고리원전 1호기의 사고는 인재로 판명났다. 사고를 은폐한 정황도 밝혀졌다. 원전 사고는 곧바로 국가 재난 사태다. 문제를 덮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정책적 인재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서동규 국제부 차장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