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는 1999년 이후 국내에서 판매된 휴대폰 1억2506만대 가운데 4000만대만 수거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통신업계나 환경단체는 회수되지 않은 휴대폰 가운데 5000만대가 방치돼 있거나 다른 쓰레기와 함께 섞여 그냥 버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몇 년씩 집 안에 방치되던 이른바 장롱폰은 주로 이사철에 쓰레기로 쏟아진다. 몇 해 전 이동통신 3사는 장롱폰을 반납하는 고객들에게 1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사용하지 않는 휴대폰의 회수율을 높여 환경오염을 막고 소비자 이용 편익도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휴대폰이 쓰레기로 매립되면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휴대폰은 그 자체로 중금속 덩어리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휴대폰 한 대당 납 함량은 0.26g, 카드뮴은 2.5PPM, 코발트는 274PPM, 비소는 20PPM이다. 만약 장롱폰 5000만대가 전량 폐기물로 버려진다면 11톤이 넘는 납이 버려지는 셈이다. 이 정도의 납은 팔당댐 저수량을 두 달간 오염시킬 수 있는 양이다.
지질자원연구원에 따르면 휴대폰 1톤에는 금 280∼400g, 은 2㎏, 팔라듐 140∼300g, 구리 140㎏, 코발트(배터리) 274㎏이 들어 있다. 천연자원이 부족해 에너지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비용을 절감하고 환경오염도 방지할 수 있는 재활용 산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최근 전자 정보기술(IT) 기기는 초정밀, 융복합 등의 추세를 보인다. 이에 따라 제품 내부 부품도 과거의 단일 부품이 아니라 모듈이나 부분품 형태로 제작된다. 과거에는 제품을 수리할 때 저항, 콘덴서 등 특정 부품만 교체하거나 단선을 연결하면 되는 등 작업이 간단했다. 그러나 이제는 부품이 모듈 단위로 구성돼 있어 특정 부품만 교체하거나 수리할 수 없다.
자원의 재활용과 비용절감 등을 위해 일본, 유럽 등지에서는 기업이 제조공장에서 수리 목적으로 재가공된 부품을 사용한다. 녹색생활 실천과 이웃사랑 나눔은 거창하거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고 벌써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지난해 전자업계는 제품 수리 시 모터 등 기계적 부품, 제품의 안전과 관련된 부품, 소모성 부품 등을 제외한 마더보드, 패널 등만 부품 재사용이 가능하게 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휴대폰, 이른바 `리퍼폰` 관련 조항은 반영됐으나 업계에서 건의한 리퍼폰과 유사한 개념의 부품 재사용 관련 내용은 반영되지 못했다.
소비자도 재생 부품에 막연한 불신을 가지고 있어 무조건 새로운 부품으로만 수리해주기를 바란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재생된 부품을 활용한 수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데도 폐기되는 부품 탓에 환경이 오염되고 있으며 새 부품을 사용함으로써 비용이 늘어나 소비자 부담만 가중되는 실정이다.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조사 결과 부품 재사용이 이루어지면 연간 250억원가량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를 우리나라 전체로 추산하면 비용을 1000억원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자원의 재활용과 환경오염 방지 차원에서 부품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해야 할 때다. 정부가 녹색성장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것에 발맞춰 소비자의 인식도 전환해 국가와 산업계,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상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상근부회장 shjeon@gok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