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과 경기침체, 유럽 재정위기가 쳇바퀴 돌 듯 악순환하고 있다.
공학자로서 단편적으로 이해하자면 한 경제권 안에서 우수한 기술이 수출 경쟁력을 갖추고 자본이 금융을 지배해 가는 과정에서 국가 간 불평등이 증폭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 우수한 기술이 영원히 시장을 지배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아무도 답할 수 없다. 시장의 요구가 변하거나 사회 패러다임이 변하면 현재 기술도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한 가지 미래에 관한 공통된 예측은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이룬 고성장을 더 이상 지속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지난 몇 차례 경제위기를 경험한 연구자들의 염려는 긴축경제가 모든 분야에서 연구개발 예산의 긴축으로 나타났고 기술개발 인력의 실직이나 역할 축소로 이어졌다는 점에 있다. 이는 산업계의 섣부른 정책이기도 하지만 연구자들도 기술개발 방향에서 긴축경제에 대비하는 전략이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늘 하던 일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좋은 성과가 나오겠지 하는 자세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여러 기업의 부침에서 경험했다.
긴축경제와 저성장 경제를 위한 기술개발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성장이 둔화하는 경제에 성장 호르몬을 주입해 성장을 촉진하는 방법도 있지만 둔화한 체질에 맞는 기술과 산업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먼저, 성장이 둔화한 사회는 물질과 에너지 자원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성장기에 많은 에너지와 물질을 소모하면서 불려온 몸집으로 노년기에도 같은 활동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한한 물질 자원과 에너지를 최적의 조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연구개발 목표에서도 이런 관점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과 에너지 압박은 우리에게도 이미 크게 다가오고 있다. 에너지와 자원의 확보만큼 최고의 효율과 수율로 활용되는 기술의 가치도 높게 평가하자는 것이다.
둘째는 인력 전환이다. 한 분야의 쇠퇴에는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떠오르는 다른 분야가 있다. 연구개발 인력에게 과감한 분야 전환을 허용해야 한다. 기능 인력은 쉽게 재교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반면에 고급 연구개발 인력은 분야 전환이 쉽지 않다. 연구개발에서 이런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창의적인 융합 연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경쟁을 거쳐 새로운 연구주제를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면 연구기관 내 또는 기관 간의 과감한 인력 교류로 고급 연구 인력에게도 빠른 변화를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자.
셋째는 연구개발 자체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다. 연구개발은 성과가 중요하기도 하지만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연구개발 자체도 새로운 산업이 되고 있다. 이 연구개발의 효율을 개선하고 국가 산업에 기여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성장 사회 핵심어는 `지속가능성`이다. 경제 활동이 활발할 때는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 되면 결국 국가 단위 정책이나 제재가 먼저 대두된다. 저성장 시대에 범지구적인 지속가능성도 중요하지만 한 국가 내 지속가능성을 강화해 나가는 산업과 과학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저성장을 비관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저성장을 받아들이고 저성장에 맞는 사회적 체질 변화를 과학기술 개발이 주도해야 한다. 인력과 자원과 환경을 지속가능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데 과학기술이 적극적으로 기여해보자.
문승현 광주과학기술원(GIST) 환경공학부 교수 shmoon@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