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형제 감독이 거장이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졸작 `허드서커 대리인(1994)` 덕분이다. 재기발랄한 형제는 전작에서 기존 장르를 비틀고 재해석하며 독립영화의 기수로 떠올랐다. 승승장구한 이들은 배신자라는 비난마저 감수한다. 메이저 영화사에서 무려 4000만달러를 투자 받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대자본을 받아 자본만능주의를 풍자하려 했던 것부터 잘못 맞춘 퍼즐이었다. 평론가는 비아냥거렸고, 관객은 고개를 돌렸다(북미시장 흥행 282만달러). 재능이 많아 되레 위기를 맞은 셈이다. 코엔형제는 낙향한다. 실패를 되짚어본 이들은 걸작 `파고(1996)`로 재기한다.
허드서커 대리인에 혹평은 쏟아졌지만 그래도 감독이 누군가. 이 영화는 경영학 책에 실릴 만한 텍스트로 가득하다. 꼭두각시 회장으로 영입한 반스(팀 로빈스)의 순진한 생각이 뜻밖의 성공을 거두고 창의적인 제품으로 탄생하는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찰스 리드비터가 `무게 없는 사회`에서 말한 `창의적 무지`가 빛을 발한다. 주인공은 편견 없이 새것을 받아들인다. 이런 태도가 초심자의 행운을 넘어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다. 오늘의 정보가 내일은 쓰레기가 되는 시대다.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얘기다. 주위를 둘러보면 헛똑똑이가 얼마나 많은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지분 매각 이후 두 달여 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 김 대표는 외산 게임이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국내 업체 실적이 L자로 하락하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다른 장르의 게임에 도전해 전선을 넓히기보다는 하나를 잘 만들어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넥슨과 시너지 전략이 기대되는 이유다.
한국 게임산업은 지금까지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하지만 터닝 포인트를 맞은 것은 분명하다. 가끔 머리를 비우자. 코엔형제처럼, 허드서커 대리인의 빈스처럼….
김인기 편집1부장 i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