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대중화로 휴대폰은 단순한 전화기라는 인식을 벗어나 우리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상품이 됐다. 휴대폰 시장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며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경쟁이 펼쳐진다. 자연스레 소비자는 적합한 휴대폰을 선택하기 위해 정확한 단말기 정보를 요구한다. 민주사회에서 국민이 정치적 주권을 가지듯 시장경제에서는 소비자가 경제적 주권을 지닌다. 휴대폰 가격 결정권은 사업자에 있더라도 상품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있다.
사업자는 소비자가 휴대폰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인 가격정보를 충분히, 정확하게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휴대폰 시장은 올바른 가격 정보가 전무하다. 소비자의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는 무시됐다. 많은 휴대폰 판매점이 정확한 가격을 표시하지 않는다. 복잡한 요금제를 구두로 설명하며 판매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가격 구조를 잘 모르는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사면서도 무료로 구입한 것으로 착각한다. 소비자들은 특정 요금제로 계약하면 공짜 휴대폰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막상 요금 고지서를 받아보면 휴대폰 기기 할부금이 포함되어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판매가격과 초기 출고가격을 함께 표시해 소비자가 큰 할인 혜택을 받는 것처럼 느끼도록 하는 부당한 마케팅 행위도 관행처럼 굳어졌다.
똑똑한 소비자가 돼 휴대폰 가격 구조를 파악하려 해도 이것이 쉽지 않다. 소비자가 제조사와 통신사의 가격정책 변화, 각종 할인제도 등 복잡한 가격 구조를 이해하긴 어렵다. 사업자와 소비자 간 가격정보 비대칭성 심화로 소비자가 부당한 피해를 보는 사례가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10월 `휴대폰 가격표시제 실시요령`을 고시하고 올해 1월부터 시행 중이다. 소비자에게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공정한 시장경쟁과 소비자권익 보호를 이루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판매자는 제품 가격을 정확히 공지하고, 소비자는 가격을 보고 구매 여부를 판단한다. 휴대폰 가격표시제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정책인 동시에 사업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 6월 실시한 휴대폰 가격표시제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고시 이행 초기보다는 일부 개선됐지만 여전히 미흡했다. 판매점의 제도 이해가 부족하다. 판매점이 개선 의지 없이 기존 판매 행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통신사는 판매점이 가격표시제를 이행하도록 적극적으로 홍보와 계도에 나서야 한다. 판매업계는 자발적인 가격표시제 이행으로 시장 공정화와 소비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소비자 스스로도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가격이 제대로 표시된 신뢰할 만한 대리점이나 판매점을 찾아야 한다. 소비자는 선택권 행사로 시장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동시에 가격표시제 미준수 업체의 감시자 역할도 해야 한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가격표시제 실효성에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가격표시제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확립해야 하는 권리다. 휴대폰 시장을 현 상태로 내버려두면 소비자의 알 권리, 선택할 권리가 침해받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휴대폰 가격표시제가 근본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제도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이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도 문제점을 민·관·산 각계 전문가가 함께 개선하다 보면 궁극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휴대폰 판매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믿는다.
박인례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academy@gc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