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따라 2007년 도입 후 지루하게 이어온 인터넷 실명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헌재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합리적 이유 없이 제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시했다. 온라인 악성 정보 감소라는 입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국내 이용자와 사업자만 제약한다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소셜네트워크와 스마트폰으로 급변하는 환경에 맞지 않는 규제로 발목이 묶인 인터넷 업계도 새 활력을 얻을 전망이다. 인터넷 정책 역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대대적 손질이 불가피하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근간=인터넷 실명제는 익명성을 악용한 불법 정보나 인신공격을 막아 책임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헌법재판소는 입법 취지는 정당하다고 봤지만 제도가 달성하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인터넷 이용자와 사업자에 주는 피해는 커 법적 균형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불법 정보로 인한 피해가 생기면 인터넷 주소 추적 등으로 가해자를 찾을 수 있고, 사후적 손해 배상이나 형사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에, 본인 확인이라는 사전 규제는 과도한 표현의 자유 제한이라고 바라봤다. 실명제의 악성 정보 위축 효과도 미미하다고 판단했다. 본인 확인 정보 보관이 개인정보 유출로 이어질 위험성도 지적했다.
◇인터넷 혁신 전봇대 뽑았다=인터넷 업계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간 국내 사업자는 인터넷 사용자가 신원 노출 위험이 적은 해외 서비스로 이동하는 가운데, 개인정보 관리 부담을 지며 서비스를 운영해야 했다. 국내 환경에 맞춰진 규제로 해외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 기업은 국내에서도 자유롭게 활동했다. 2009년 국내 사이트에 댓글 기능을 폐지한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해외 소셜네트워크 및 모바일 서비스가 몰려오면서 국내 기업의 체감 역차별은 더 커졌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인터넷 생태계를 왜곡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폐지하게 돼 다행”이라며 “한국 인터넷 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에 대해 전반적 개선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제도 개선 급물살=헌재 판결로 정부 추진 인터넷 규제 정책 개선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방통위는 지난 연말 이후 인터넷 실명제 재검토를 전제로 제도 개선 작업을 벌여왔다. 인터넷 서비스의 주민등록번호 수집을 전면 금지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시행 중이다.
잇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개인정보 보호가 인터넷 정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실명제 위헌 판결도 나오면서 인터넷 정책 전반이 익명과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할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반면에 전자상거래 관련 법률 등은 여전히 본인 확인을 위해 주민등록번호 보관을 요구해 실제 인터넷에서의 실명 확인 관행은 큰 변화가 없으리란 전망도 있다.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실명제 폐지 이후 전자상거래 등을 위한 안전하고 편리한 본인 확인 수단 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실명제 폐지는 대선을 맞은 우리 사회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작년 SNS를 이용한 선거 운동을 제한한 공직선거법이 한정 위헌 판결을 받은 데 이어 실명제도 위헌으로 결론남에 따라 인터넷을 활용한 선거 운동에 제약이 대폭 풀릴 전망이다. 실명제로 인한 심리적 위축이 해소된 상황에서 지난 서울 시장 선거와 총선에서 위력을 확인한 스마트폰 및 SNS와 연계해 폭발적인 정치 참여를 끌어낼 가능성도 점쳐졌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