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Knock-In Knock-Out)는 사실, 사고가 터진 지난 2008년 이후 우리나라 산업계에선 `금칙어` 비슷한 것이었다.
누구든 말을 꺼내면 한쪽의 처지를 설명하게 되고 어느 쪽 편을 들어주든 다른 쪽의 공격을 받는 구조가 굳어졌다.
지난주 법원은 키코 피해를 본 중소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처음으로 기업 손을 들어줬다. 은행은 즉각 반발했고 항소를 준비 중이다.
그렇다고 이게 끝이 아니다. 항소심이 있고 결심까지 가봐야 결론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판례도 이번과 달랐다. 단정할 수 없는 문제다.
피해가 터졌던 4년 전 그때, 한 상장사 최고경영자(CEO)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 “이런 날도둑질 같은 일을 당하고 주가마저 폭락하니 정말 대한민국은 기업하지 말라는 나라가 맞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하루아침에 제품을 팔아 남기는 이익보다 수십배, 수백배 더 많은 돈을 은행에 갖다 바쳐야 하니 분통이 터질 만도 했다. 사업 자체를 접은 기업도 여럿 나왔다.
그렇다면 기업의 이 하소연이 사리에 전부 맞을까. 그때 한 기업 인사로부터 들은 증언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는 “사장이 키코에 가입해 놓고는 사업엔 관심이 없다. 환율만 쳐다볼 뿐이다. 왜 생고생을 해가면서 영업을 하냐는 눈치다. 몇몇 수출 기업 사장이 모이면 가만히 앉아 돈 벌 궁리 중 하나로 키코를 꼽는다”고 말했다.
당시 뜻밖의 피해를 본 기업이 대부분이었지만, 분명 탐욕에 눈먼 기업도 있었다.
기업과 반대 측에 선 은행은 어땠을까. 이번 법원 판결에 해당 은행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방침이다. 물론 그때도 그랬다. 키코 상품에 가입한 책임은 기업에 있으며 은행이 키코 상품 가입을 강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키코로 돈을 번 기업은 은행에 고맙다는 소리 한마디도 안했다. 피해가 나오니 떼를 쓰는 것이다. 이익이 났던 것은 감추고 피해가 났으니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논리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자본의 논리처럼 은행은 당시 키코 상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 가입 실적을 늘리기 위해 기업의 피해 가능성은 안중에도 없었다. 아예 피해 가능성을 가리고 장점만 부풀렸다.
키코는 외생변수에 크게 흔들리는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 구조가 낳은 사생아다. 탐욕도 작용했다.
기업은 기술과 제품 선진화에 매진하고 은행은 이들의 사업과 수출을 도와 수익을 내는 `정도(正道)`로 갔다면 적어도 지금 같은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풀이해선 안 되는 경험이다.
이진호 경제금융부장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