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특허 리스크 다시 생각할 때

충격적이다. 보호무역주의 때문일까. 저급한 애국심 탓일까.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특허 소송전에서 완패했다. 미국 새너제이지방법원 평결에서 배심원들은 전원일치로 특허 침해 결론을 내렸다. 삼성의 통신기술 침해가 한 건도 인정받지 못했거나 애플의 디자인이 전부 다 인정받은 사례는 미국 법원이 처음이다. 최종 판결은 아니지만 배심원 평결이 뒤집히기는커녕 배상금이 더 늘어날 수 있다. 삼성으로선 최대 위기다. 배심원들은 아이폰·아이패드 디자인과 스마트폰 화면 가장자리를 표시해주는 `바운스백` 기술, 스크롤과 멀티터치줌, 내비게이트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애플의 디자인 특허가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 다른 제품에 적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반면에 우리 법원은 애플이 특허로 내세운 사각둥근 테두리 디자인은 이미 소니와 LG전자가 먼저 사용해서 스마트폰 디자인에 응용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배심원이 봤을 때 닮았는지 관점으로 판단하는 `트레이스 드레스`에 주안점을 둔 미국과는 다른 판단이다.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일까. 비전문가들이 내린 평결치고는 꽤나 도발적이다. 갤럭시S와 아이폰3GS가 외관상 닮았는지 느낌으로 판단하긴 했지만 통신기술은 판단하기 어려워 그냥 넘어갔다는 후일담이다. 전날 우리 법원의 판결이 알려진 다음이어서 미국적 애국심이 발휘될 소지도 그만큼 많다. 자전거상·사회복지사·건설사 직원 등 비전문가들이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특허소송을 법 취지에 맞게 판단했을지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문제는 미국 법원의 판결은 다른 국가의 재판에 판례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에서 진행 중인 30여건에 달하는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배상액 1조2000억원은 사상 최대 배상금 전쟁으로도 비화할 수 있다. 당장 브랜드 가치 추락이 걱정이다. 27일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주가는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영향권에 이미 들어섰다. 애플의 `카피캣`에 전방위 공세를 펼치면 브랜드 가치 6위(382억달러) 수성도 버겁다. 삼성은 지난 2분기 미국에서만 6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팔았으나 이로 인해 판매에 심대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다.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받게 됐다. 소송 전략도 다시 짜야 한다. 당장은 판결과 항소 등 소송에 전념해야 하지만 이후의 준비 역시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도 힘을 보태야 한다.

문제는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우리 가전·반도체·디스플레이 제품은 잇단 특허 소송과 반덤핑 제소 등으로 몸살을 앓는다. 높아진 우리 기업 위상이 오히려 경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 등 다른 나라의 수입규제 조치가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었다. 특허소송 역시 배가량 늘었다.

특허·통상리스크 관리 전반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삼성·LG는 부품공급 기업이면서 세트판매 기업이라는 점에서 집중적인 견제 대상이다. 사업구조 재편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꾸준히 나온다.

이제는 퍼스트무버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선진국일수록 더 강한 애국심과 보호무역주의 벽을 넘기 위해서다. 장기적으로 냉정하게 미래를 모색하자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디자인 경영, SW 경영, 콘텐츠 경영, 창조 경영 등 새 경영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계가 아닌 나침반이라는 피터 언더우드의 말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