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화재·태풍 등 잇단 재해에 `재난망` 없어 아찔…필요성 재부상

#지난 27일 오후 2시 부산지하철 1호선 대티역으로 진입하던 전동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황한 시민들이 불을 피해 달아나며 전동차 안은 물론이고 승강장까지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 50여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행히 화재가 크게 번지지 않았으나 자칫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

#지난 28일 오전부터 전라남도 가거도, 만재도는 휴대폰을 포함한 모든 통신이 멈췄다. 태풍 볼라벤이 이 지역의 유일한 통신 철탑을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이곳에 가족을 둔 이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높은 파도 때문에 접근이 어려워 정확한 피해상황을 파악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달 들어 지하철 화재와 태풍 등 재난상황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유사시 안정적인 통신수단을 확보하는 `국가 재난안전통신망(재난망)`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재난망은 지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시작됐지만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예산낭비와 외산 장비 독점문제 등이 이슈화하면서 백지화와 추진을 거듭했다. 사업이 연기되면서 경찰, 소방, 지하철, 지방자치단체 등 각 기관은 제대로 된 전용 통신 수단을 갖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주 부산지하철 화재가 큰불로 번졌으면 대구 지하철 참사 때처럼 재난망이 없어 구조작업에 큰 차질을 빚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부산지하철은 1985년 개통 이후 쭉 아날로그 장비인 VHF를 전동차 간 통신수단으로 사용한다.

이미 내구연한이 지났으나 섣불리 교체에 나서지 못한다. 재난망 사업의 주요 대상이 지하철이기 때문이다. 재난망 프로젝트가 결정되길 기다리다 교체 시기를 놓쳤다. 전용 통신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기관사들은 휴대폰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부산지하철은 올해도 재난망 사업이 결정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통신 인프라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부산지하철 관계자는 “재난망 진행상황에 따라 통신수단 개선을 준비해왔지만 (프로젝트가 진행되지 않아) 미뤄진다”며 “올해도 사업을 확정하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고도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도서 지역 등 통신 대체수단이 없는 곳은 자연재해로 통신 블랙아웃을 겪는 게 다반사다. 재해로 응급 구조가 필요해도 연락이 닿지 않아 자칫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태풍 볼라벤으로 인한 통신 피해는 전송로 1개, 무선기지국 50개, 유선회선 172개, 인터넷회선 108개에 달한다.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는 집중호우로 강남일대 이동통신이 반나절 이상 마비됐다.

재난망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정부는 지난해 사업을 재개했다. 행정안전부는 기술검증을 마치고 올 하반기 재난망 구축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도 신청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공급업체 경쟁이 심하고 기술방식에 이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부처 간 이견이 여전한 주파수 문제도 걸렸다.

정권 말기여서 1조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이 쉽게 예타를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재난망 필수기관의 한 관계자는 “위에서 기술방식 등 평행선을 달리는 논의를 하는 동안 현장에서는 연일 아찔한 순간이 이어진다”며 “경제성보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유사시 안정적인 통신을 빠른 시일 내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