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변해야 살아남는다](https://img.etnews.com/photonews/1209/327013_20120905162752_045_0001.jpg)
“당시만 해도 인터넷 보급이 확산하고 인터넷 비즈니스가 한창일 때였지만 오프라인으로 이뤄지던 거래를 전자상거래로 전환하기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전자상거래 없이도 잘해왔고 수요·공급자 간 관계도 돈독하게 유지하고 있는데 굳이 도입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현장 실무자들의 거부감이 강했기 때문이죠. 전자상거래를 도입하면 거래 내용이 투명해지고 물리적·시간적 낭비 요소도 줄어들기 때문에 경영진을 설득하기엔 그만이었지만 실무자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A그룹에서 기업소모성자재(MRO) 구매대행 업무를 담당하는 B 전무는 10여년 전을 이렇게 회상했다. 지금은 MRO 구매대행의 장점이 많이 알려져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에서도 도입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건설현장 분야는 아직도 적용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랜 관행이 혁신을 가로막는 셈이다.
30년 넘게 제조업 한 우물만 파온 C 회장은 몇 년 전 홀연 업계를 떠났다. 에너지 분야를 포함, 여러 분야에 투자한 C 회장은 에너지 절약 제품으로 조선·철강업계를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기존 제품보다 효율이 좋고 에너지도 줄일 수 있는 제품이지만 현장 실무자는 잘 써온 제품을 바꿔서 만에 하나 돌아올 수 있는 위험을 떠안기 싫었던 것이다. C 회장은 조선·철강업계의 보수적인 반응을 경험하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첨단 디지털 시대에 아직도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는 산업현장은 발전할 수 없다. 경쟁이 심한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수율 좋은 장비나 기술이 개발되면 앞다퉈 도입해서 원가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여야 최고 대우를 받는다. 우리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가 이 분야 부동의 1위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끊임없는 개발과 혁신 노력에서 나왔다.
C 회장은 요즘 또 하나의 고민에 빠졌다. 발광다이오드(LED)의 수명을 늘리고 발열 문제와 빛 효율을 개선한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했지만 시장에 내놓는 게 조심스럽다. KC마크와 녹색인증을 받으려고 절차를 밟고 있지만 경쟁 업체 견제가 만만치 않다. 경쟁업체 관계자가 각종 인증마크나 정부 용역과제 평가위원일 때가 많아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서다. 이해 관계자를 평가위원으로 포함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경쟁 제품이 심사대에 올랐을 때 저평가하는 수준 낮은 윤리의식도 문제다.
산업사회는 변화와 혁신을 반복하며 성장해왔다. 부존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이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도 혁신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고객의 요구가 다양화하고 급변하는 첨단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