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 요즘 '한국지사'에 주목!

2010년 초 삼성전자는 미국 아날로그 반도체 기업 S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스마트폰 개발 단계에서 회로 불량이 생겼는데, S사가 발 빠르게 대응을 해주지 않은 탓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뒤처져 일분일초가 다급한 때였다. S사가 본사에서 2주 뒤 엔지니어를 파견할 때까지 삼성전자 연구진은 손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글로벌 부품·소재·장비·계측기업체들은 반도체·디스플레이·TV에 이어 스마트폰 시장까지 1위 자리를 차지한 삼성전자를 사로잡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의 역할도 한결 강화했다.

글로벌 계측기 1위 기업 애질런트는 최근 한국에 진공 설비를 갖춘 연구소를 만들었다. 아 시아 시장 연구개발(R&D) 중심이 일본이라는 관행을 깨고 우리나라에 시험 인프라를 구축했다. 이 회사는 반도체·화학·환경 등 실험을 통해 더욱 발 빠르게 한국 기술 기업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커넥터 제조업체 몰렉스는 지난해부터 한국지사의 R&D 인프라를 확충했다. 과거에는 한국 기업이 요청한 기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렸다. 지금은 일주일 이내로 단축했다. 일본 지사가 주로 맡았던 R&D 기능의 상당 부분을 한국 지사로 옮기고 고급 엔지니어를 양성한 덕분이다. 한국몰렉스의 R&D 역량이 높아져 일부 제품을 오히려 일본 지사에 역수출할 정도다.

실리콘을 주로 생산하는 독일 기업 바커는 지난 3월 아시아 지역 첫 기술연구소를 한국에 설립했다. 이 기술연구소는 전자·자동차 시장을 겨냥, 첨단 신소재 개발에 주력한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실리콘 관련 R&D와 시험평가 기능을 모두 갖춘 연구소다.

한국 기업과 기술 미팅을 할 때 글로벌 기업 본사가 파견하는 인력 수준도 올라갔다. 과거에는 아시아 지역 총괄 매니저 이하급을 주로 파견했다. 지금은 최소 부사장급을 보낸다. 독일 특수 유리 제조업체 쇼트는 율리히 아커만 수석 부사장을 한국에 파견해 미디어 설명회를 주재했다. 삼성·LG 등 고객사 미팅도 직접 참석해 마무리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지사에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다”며 “한국지사장을 본사 임원급으로 대우하는 글로벌 기업이 많아진 것도 최근 두드러지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