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 때 겨우 스물세 살. 경력설계니 자아실현이니 거창한 꿈보다 그저 `미국 유학`이라는 단어 자체에 설레던 때다. 그러나 미국생활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기본 의사소통도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에서 매일 같이 들어야 하는 전문 용어는 외계어와 다를 바 없었다.
미국 교육방식은 매 순간 주눅들게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확한 답을 내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험 중 어떤 결과가 나오면 항상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항상 어떻게 대답해야 정답일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생각하는 방향에 대한 조언이 있을 뿐 연구에는 자신의 주관과 의지가 전부다.
그걸 깨닫고 익숙해지는 데까지 한 해 그리고 두 해가 흘렀다. 지도 교수는 항상 한국 유학생의 성실함과 우수성을 높이 평가했던 사람이다. 내게도 같은 기대를 한 덕분에 겨우 일년차가 감당하기엔 벅찬 미 에너지부(DOE) 프로젝트를 맡겼다. 프로젝트 진행 내내 책임감만으로도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소속된 EPI(Emulsion Polymer Institute) 연구는 물을 용매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미래 녹색기술에도 쉽게 응용할 수 있다. 오랫동안 관심을 받아 왔던 나노기술에도 유용하며 산업적으로 많은 이점이 있는 `유화중합`이라는 방법을 연구하는 곳이다.
그때 당시 서로 상반되는 세 가지 특성을 만족시켜야 하는 입자를 만들기 위해 2년간 끝없이 토론하고 실험했다. 지옥을 걷는 듯 한 레이스를 지나 3년차가 되자 마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조금씩 복잡한 실타래가 풀려가는 느낌이었다. 박사 학위를 무사히 마친 나머지 2년간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단 듯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당시 프로젝트는 미국 모 회사와 산학협력으로 진행되던 것이라 논문에 이름조차 쓰기 어려웠다. 하지만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취직을 한 후 당시 프로젝트를 바탕으로 홍콩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발표도 했다. 다양한 경험 덕분에 `쓸모없는 땀과 노력이라는 것은 없다`는 다소 진부한 진리를 몸으로 체득했다.
요즘은 취업난과 끝이 안 보이는 경제난 속에서 한창 꿈을 펼쳐야 할 20대가 스스로를 `병맛`이라고 부른다는 안타까운 시대다. 하물며 과학자를 꿈꾸는 여대생은 또 얼마나 방황을 해야 하는가. 나 또한 치열히 고민하고 수없이 방황했던 20대였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길을 걷다보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흥미를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실험실에서 일하는 여러분을 위해 몇 가지 팁을 준다면 항상 `왜` 라는 질문을 통해 답을 찾으며 자기 스스로를 동기부여 하라는 것이다.
한수정 LG화학기술원 과장(sujeong.ha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