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17] 전자산업 수출 100억달러 돌파 <1987년 12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경공업 중심의 산업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는 있었지만, 황폐화된 국토와 산업은 국민을 먹여 살리기에 급급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실시했다.

1987년 12월 전자수출 100억달러 돌파의 주역이었던 흑백TV. 삼성전자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마무리 공정을 하고 있다.
1987년 12월 전자수출 100억달러 돌파의 주역이었던 흑백TV. 삼성전자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마무리 공정을 하고 있다.

부가가치가 큰 철강, 기계, 화학 같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면 발달된 기계공업 등을 이용한 공업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1972년 11월 7일 `월간 경제동향보고`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이 연평균 25% 수출증가를 계속하면 1980년에는 적어도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할 수 있다는 한국경제의 장기전망을 제시하며 이에 주력할 것을 지시했다.

그 결과 1980·1981년 목표였던 100억달러 수출계획을 1977년 12월 22일 오후 4시 100억 1600만달러 수출에 도달함으로써 달성했다. 이는 1964년 1억달러 수출돌파에 이어 13년 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1962년 이래 연평균 수출신장률은 42.4%를 기록했고 수출시장은 33개국에서 133개국으로, 수출품목은 69개에서 1200개로 늘어난 것이다.

100억달러 수출 10대 상품은 직물제의류(9.9%), 전기기기(9.2%), 수송용기기(6.8%), 직물(6.1%), 신발(4.9%), 활선어(4.8%), 스웨터류(4.4%), 합판(3.2%), 섬유사(2.5%), 강판(1.7%)이었다. 즉 10대 상품 중 공업제품이 9개였고 중화학공업제품이 3개였다. 1977년 수출 100억달러는 세계 25위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에는 산업 포트폴리오상 부족한 점이 많았다.

결국 더 나은 미래가치를 찾을 수 있는 산업이 필요했다. 그 대안이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전자산업이었다.

◇역사적인 전자산업 수출 `100억달러`=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시작은 1959년이다. 처음 라디오를 조립 생산한 해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 전자산업은 1970년 5500만달러 수출에 이어 1987년 드디어 100억달러 수출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음 해인 1988년 150억달러 수출을 달성하는 등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1970년 이후 연평균 37%의 고도성장을 이어갔다.

수출증가에 힘입어 지난 1970년 총수출의 7%를 차지했던 전자산업은 1988년 25%로 우리나라 수출산업 1위로 올라섰다. 수출은 물론이고 고용과 투자 등 우리나라 산업을 선도하는 위치를 차지했다.

1970년대 수출주도로 성장하던 전자산업은 1980년에서 1985년까지 내수기반 조성에 주력하며 힘을 축적한 뒤 1986년부터 다시 수출 주도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수출 100억달러 돌파는 우리 전자산업의 변곡점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시대별 수출품목 구조를 보면 지난 1972년 IC, TR, 라디오가 수출 주종품목이며 1976년에는 IC, 녹음기, 앰프, 라디오, 흑백TV가, 1987년에는 IC, 컴퓨터, VTR, 컬러TV, 전자레인지 등 고부가가치제품이 주종을 이뤘다. 또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국제적 지위는 1980년에 수출 20억달러로 세계 14위를 차지했으나 1988년에는 일본, 미국, 서독,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를 차지했으며 1980년의 세계시장 점유율도 2.1%에서 1987년 5.0%로 증가했다.

1987년의 품목별 위치를 보면 흑백TV가 세계 1위 생산국이었으며 VTR, 비디오테이프, 전자레인지, CPT가 세계 2위 생산국이며 전화기, 컬러TV가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수출 상대국도 지난 1972년에 36개국에서 1987년에는 123개국으로 증가하는 등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수출산업의 핵심은 물론이고 타 산업 발전의 기반이 됐다.

이런 발전의 성과와 전자산업 100억달러 수출을 기념하기 위해 1987년 12월 10일 하얏트호텔에서 나웅배 상공부 장관을 비롯한 각계 인사가 참여한 `전자인의 밤`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전자산업 발전에 기여한 전자업계 임직원 및 생산근로자에게 동탑, 철탑, 동탑 등 산업훈장과 산업포장 등 총 68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했다. 주요 훈포장 수상자 명단에는 삼영전자공업, 금성반도체, 한국전기음향, 삼화콘덴서공업, 한국코아 등의 대표이사가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 전자공업의 100억달러 수출은 국내 산업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전자산업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이정표가 됐다.

이런 우리나라 전자산업 성장으로 선진국들은 자국 산업 보호라는 이유로 우리나라 수출주요품목에 수입규제를 유발해 통상마찰과 그에 따른 대응책인 수입자유화로 시장을 개방하게 됐다.

1985년 서방정상회담 이후 원화절상으로 인한 업계의 수익성 악화와 더불어 고임금 및 노사분규 등에 따른 후발개도국과의 경쟁력 약화로 생산기지 이전 및 중국, 소련 그리고 동구권 진출로까지 이어지는 한국 전자산업의 다각적인 국제화를 꾀하는 계기가 됐다.

'디지털전자 수출 1000억달러 돌파 및 전자의 날 제정' 기념식이 2006년 2월 15일 열린 가운데 초청 인사들이 ‘전자의 날‘ 선포 버튼을 누르고 있다. 왼쪽부터 정명화 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이해찬 총리, 김용갑 국회 산자위원장, 이병석 의원, 김쌍수 LG전자 부회장, 박성득 전자신문사 사장.
'디지털전자 수출 1000억달러 돌파 및 전자의 날 제정' 기념식이 2006년 2월 15일 열린 가운데 초청 인사들이 ‘전자의 날‘ 선포 버튼을 누르고 있다. 왼쪽부터 정명화 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이해찬 총리, 김용갑 국회 산자위원장, 이병석 의원, 김쌍수 LG전자 부회장, 박성득 전자신문사 사장.

◇디지털전자 수출 1000억달러 돌파=수출 100억달러를 돌파한 지 18년 만인 2005년 우리 전자산업 수출은 다시 그 10배인 1000억달러를 돌파한다. 국내 단일 산업 최초이며 일본(1994년), 미국(1996년), 중국(2002년)에 이어 네 번째다. 세계 4대 디지털 전자산업수출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한 것이다. 가전, 반도체, 휴대폰 주도로 총수출 비중도 38%에 달했다. 2006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10월 셋째 주 화요일을 `전자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지난 1972년 1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이래 33년 만에 국내 전자산업이 1000억달러 고지를 넘어선 것이다.

1987년 수출 100억달러를 달성한 이후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1991년 200억달러, 1994년 300억달러, 1995년 400억달러, 1999년 500억달러, 2000년 600억달러로 매년 100억달러 이상씩 수출을 늘려왔다.

디지털전자 수출 1000억달러 달성은 미국·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 시장 경기가 회복되고, 중국이 긴축정책에도 불구하고 고성장세를 지속하면서 우리 상품 수요를 확대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휴대폰·프리미엄급 생활가전·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요 수출 품목의 기술·품질·디자인 등 산업경쟁력이 향상됐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당시 정부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15년까지 디지털전자 수출 3000억달러, 세계시장 점유율 14% 달성 등 `2015 디지털전자산업 발전전략`을 수립하기도 했다.

◇세계 최강 IT수출 강국=2011년 IT수출은 전년 대비 2.0% 증가한 1569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IT수지는 전체수지(333억달러 흑자)를 2.3배 웃도는 754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품목별로도 스마트폰, 시스템반도체 등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융합형 제품 수출이 급증했고 스마트폰은 2011년 2분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등극했다.

10대 수출품목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휴대폰, TV부분품, 의료정밀기기, 접속부품, 2차전지, 냉장고, 모니터, 태블릿PC 등이 차지했다.

휴대폰은 250억6000만달러(스마트폰 118억8000만달러)로 세계 시장을 평정했으며 반도체도 501억5000만달러로 세계 시장점유율 60%대를 돌파했다. 시스템반도체(200억달러)가 전년 대비 24.0% 늘어 반도체 주력품목으로 떠오르며 사상 최초로 D램 수출(128억3000만달러)도 넘어섰다.

개별기업의 성장도 눈부시다. 삼성전자는 2011년 수출액 101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수출 100조원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전체 수출 16.5%에 해당한다. 2007년 74조원, 2010년 95조원에 이어 꾸준한 증가세다. 1000억달러 돌파도 가시권이다. 삼성전자 2011년 전체 매출의 83.9%인 138조 4692억원이 해외 매출이다.

소니,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 대표 전자기업을 제친 것은 물론이고 넘기 힘든 벽으로 여겨졌던 모토로라, 노키아 등을 차례로 추월했다. 화웨이, ZTE 등 중국기업의 추격이 거세긴 하지만 당분간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국내 전자기업들의 성장세는 경쟁자를 찾기 힘들 전망이다.

특히 최근에는 전자산업 자체뿐 아니라 자동차, 조선, 건설 등 다른 산업에 녹아들면서 국가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1959년 라디오 조립에서 시작된 전자산업은 반세기 만에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