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버그`라고도 불린 `Y2K`는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지구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이다. 1900년대 개발된 컴퓨터들이 연도를 마지막 두 자리로 표기하고 있어 새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2000년대와 1900년대를 구분하지 못해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세금계산서 발행, 금융거래 등은 물론이고 병·의원 의료체계, 수술기록 등이 혼선을 일으키면서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됐다.
![새천년을 하루 앞둔 1999년 12월 31일 김종필 국무총리(오른쪽 두번째)와 남궁석 정보통신부 장관(맨 오른쪽)이 정보통신부 15층에 마련된 `Y2K 정부종합상황실`을 방문해 Y2K 사고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9/11/315736_20120911175037_709_0001.jpg)
각국 정부는 이 같은 혼란을 미연에 막기 위해 IT 개발자들을 고용, 핵심 코드를 네 자릿 수로 수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전산 및 네트워크 시설 사전 점검에 민관 모두 분주했다.
이 같은 노력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정작 새 밀레니엄이 됐지만 별다른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IT기업들이 위기론을 과대 포장해 이익만 챙겼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Y2K 공포, 컴퓨터 연도 표시 관행 탓=밀레니엄 버그는 1000년을 일컫는 밀레니엄과 컴퓨터의 오류(에러)를 뜻하는 버그를 합성한 말이다. Y2K는 밀레니엄 버그의 별칭으로 `Y`는 연도(Year)의 첫 글자고 마지막 `K`는 1000을 뜻하는 킬로(Kilo)에서 비롯됐다. 컴퓨터 인식오류에서 기인했다고 해서 `컴퓨터 모라토리엄`으로 지칭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하드웨어 기억용량을 줄이기 위해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만 사용한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행이 시발점이었다. 전산구축 초기인 1960년대부터 프로그래머나 기업가들이 비용 절감과 간편함을 위해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반도체 칩에 연도표시를 본래의 네 자리가 아닌 두 자리로 표기해왔다. 예를 들어 1998년을 98로 적은 것. 그러나 2000년대가 되면 기존 방식대로 연도를 00으로 표시하게 되고 컴퓨터는 이를 1900년으로 혼용 인식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 내장된 반도체칩이 2000년을 1900년으로 잘못 인식할 경우, 컴퓨터 시스템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전산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사회적인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공상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이 1999년 하반기에 예고됐다.
당시 전 세계는 `공포` 그 자체였다. Y2K 문제로 금융사고는 물론이고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위험시설이 오작동을 일으키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이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들이 모두 대책 마련에 발 벗고 나섰다. 아이러니하게 컴퓨터로 야기된 문제였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투여되면서 IT업계는 한때 `Y2K 특수`로 수혜를 입었다.
◇정부 종합상황실 가동, 위기 대책 서둘러=정부를 비롯해 공공기관이나 주요 기업들은 2000년을 앞두고 본격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개별적인 대응만으로는 Y2K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우리 정부는 1999년 상반기부터 비상대책과 사후 관리방안을 수립했다. 종합적인 상황관리와 기술지원, 홍보를 담당할 `Y2K 정부종합상황실`을 구성하고 24시간 상황관리와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종합상황실은 당시 정보통신부 Y2K 상황실 근무자와 관련부처, 민간단체 인력 등 민관 합동으로 운영하고 분야별 Y2K 전문가 풀을 운영해 기술자문과 문제 원인 조사, 복구지원 요청에 대응했다.
정부는 또 해외 정부와 공조체제 유지에 힘을 썼다. 외교부 해외공관을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2000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뉴질랜드, 호주 정부와 협력 체제를 구축해 연도 전환기간에 발생하는 문제에 사전 대응하기로 했다. 행정자치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24시간 동안 재난상황 및 긴급구조 등을 위한 전국 차원의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경찰청도 사회혼란에 대비하기 위한 치안유지 대책을 마련했다.
일부 부처를 중심으로 비상계획에 대한 모의 테스트를 실시해 문제점 보완에 들어갔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Y2K 국민대처 요령`을 발표해 만일에 발생할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2000년 돌입 나흘 만에 상황종료 선언=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2000년에 들어섰으나 우리나라는 다행히 커다란 사고 없이 Y2K 문제를 넘길 수 있었다. 정부 대응에 힘입어 국가 핵심시설에는 Y2K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1월 4일 우리 정부가 공식 집계한 국내 Y2K 문제 발생 상황은 모두 16건으로 기록돼 있다. 정부가 집중 관리했던 13대 중점 분야에서는 의료 두 건과 중소기업 세 건 등으로 문제가 발생했으나 환자관리프로그램이나 자동화시스템 등에서 오류가 발견돼 피해는 크지 않았다. 나머지 11건도 아파트 난방제어장치 작동 정지나 비디오 대리점 판매시점정보관리(POS) 시스템 오류 등으로 애초 우려했던 국가적 재난 사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반면에 IT 선진국을 자처하고 Y2K 문제를 가장 앞서 완벽하게 해결했다고 큰소리치던 미국과 일본은 원자력발전소에서 Y2K로 인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망신을 당했다. 당시만 해도 IT 기술 2등국으로 분류됐던 우리나라는 Y2K 문제 해결로 상당한 자부심을 느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Y2K 정부종합상황실을 총괄해온 정보통신부의 당시 수장이었던 남궁석 장관은 2000년 1월 4일 16시부로 `Y2K 상황 종료`를 선언했다. 남궁 장관은 상황실에서 집중 관리해온 13대 중점 분야 5371개 기관이 정상 운영돼 Y2K 비상근무체제를 해제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큰 문제없이 Y2K 문제를 넘겼지만 해외에서는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 IT업계가 과도하게 문제를 부풀려 잇속을 챙겼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Y2K 문제 해결사를 자처했던 전문가들이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었다.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매출을 올리는 데 혈안이 됐던 Y2K 컨설팅업체들도 업종 변경을 서두르면서 살길 찾기에 나서는 등 세계를 뒤흔든 Y2K 문제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
◆Y2K 위장 바이러스 기승
1999년 하반기 Y2K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자 또 다른 문제가 터졌다. Y2K 문제에 편승해 컴퓨터 바이러스와 해킹이 기승을 부린 것.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보호센터, 백신업체 등 관련 기관과 업계는 관련 바이러스를 공표하는 등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했다. 당시 발표된 Y2K 바이러스는 현재 시각에서도 기발해 Y2K 문제가 사회에 미친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2000년 기념 바이러스:새 천년을 기념해 축하카드, 기념카드 형태의 전자메일을 통해 전파되면서 전자메일을 읽거나 첨부파일 실행 시 작동하는 바이러스로 Happy99, WM97/ZMK 등이 있다.
△Y2K 해결을 위장한 바이러스:Y2K 문제해결을 위한 유틸리티, 패치 등으로 위장해 컴퓨터 사용자에게 전달돼 실행 시 작동하며 종류로는 Y2KCOUNT, W32/Fix 등이 있다.
△Y2K 거짓정보 바이러스:Y2K 문제가 없는 시스템에 Y2K 문제가 있다는 등 다양한 내용의 메일이나 공지기능을 통해 사용자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거짓 메시지를 보낸다. Disney Hoax, Ghost, AIDS Hoax 등이 있다.
△Y2K 문제해결프로그램을 공격하는 바이러스:Y2K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치한 유틸리티나 패치 등을 대상으로 공격해 이를 제거 또는 변형함으로써 Y2K 문제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다.
△Y2K 문제 관련 신종바이러스:광범위한 전파속도를 갖고 있으며 해킹과 결합된 형태로 사용자 정보유출을 노리거나 시스템의 날짜를 변경하는 공격으로 문제를 야기시키는 바이러스로 PrettyPark, Dropper/Ecokys, Back Orifice 2000, Sub7 등이 이에 해당된다.
△기존 바이러스의 변종 바이러스:기존 바이러스를 변형해 바이러스의 활동일자를 변형해 잠복기간을 거친 후 2000년 전환시점에 출현하도록 한 바이러스. 예를 들어 13일 금요일 발생하는 예루살렘 바이러스를 매주 금요일 발생하게 하며 4월 26일 발생하는 CIH를 매월 26일 발생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