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2년 1분기 전 세계 롱텀에벌루션(LTE) 스마트폰 시장에서 국내 제조업체 점유율은 73%에 이르렀다. `정보통신(IT)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성과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IT 변방에 있던 나라였다. 소수의 기술 전문가와 관련 학과 대학생만 미국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에 전화선을 이용해 접속했다. 앨빈 토플러 교수가 1981년 `정보화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소개한 책 `제3의 물결`이 1988년 국내에 번역돼 막 읽히기 시작했을 즈음이다. 일반인은 수도 없는 데이터가 가상공간을 이동하는 지금과 같은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1991년부터는 전화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 텍스트 게시판 기반 하이텔·천리안 등 PC통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약 20년, IT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던 원동력은 IT전담 부처인 정보통신부(정통부)가 만들어지고 전 산업 분야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정통부가 강력하게 IT산업 육성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 1996년 1월 1일 발효된 `정보화촉진기본법`이다. IT산업 전반을 관할하는 근거법을 제정한 것은 세계 처음이다. `인터넷`이라는 용어조차 보편화하지 않은 시절, 전길남 KAIST 명예교수 등 몇몇 선각자들이 앞다퉈 IT 산업 육성을 주장한 덕분이다.
![이석채 정통부장관이 제안한 정보화촉진기본계획안과 추진과제별 담당부처와 협조기관 내용. 이 작업을 총괄한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9/13/2134214124.jpg)
◇정보화촉진기본법에 담긴 내용=IT산업 발전의 시금석이 된 정보화촉진기본법의 내용은 △5년 단위로 정보화촉진 기본계획 수립 △정통부 장관이 관계중앙행정기관별 부문 계획 종합 수립 △국무총리 소속 하에 정보화추진위원회 신설 △정보통신기술 표준화 △개인정보 및 지식소유권 보호 △정보통신 기반 고도화 △정보통신산업단지 구축 △정보화촉진 기금 조성이다.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에 관련부처 장관, 국회 사무총장, 법원행정 처장 등 3부를 망라하는 범국가적 추진체를 만들었다. 따로 놀던 IT정책을 청와대(국무총리실)가 중심을 잡고 조율하면서 정통부가 주관하도록 했다. 당시 각 부처 간 중복 투자 문제가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민간 초고속망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건 초고속통신망 보급률 1위 국가로 빠르게 성장하는 배경이 됐다. 표준화 지원은 2세대(G)·3G 이동통신망 등 표준 제정에 국내 회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한국이 초고속인터넷망, 이동통신망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구축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특히 정보통신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정보화촉진기금을 만들어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재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통신(현 KT)을 민영화하면서 받은 주식매각대금 중 30%를 정보화기금으로 출연했다. 국가 기반시설인 통신망이 중심이 돼 2000년대 이후 인터넷 닷컴 붐을 이끌었다. 2010년부터 모바일 콘텐츠 시장이 활성화된 것도 이동통신망 기술을 빠르게 적용한 결과다.
이 법 이후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통신 대기업이 등장했고 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초고속인터넷망을 제공해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 이후 문제가 된 개인정보보호, 지식소유권 보호 규정도 이미 이 법에 담은 건 당시 법안 입안자들의 혜안을 엿보게 한다.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 과정=처음 제안된 건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이다. 발효까지 약 3년이 걸렸다. 당시 정권은 `국가전략계획`을 수립했다. 2001년까지 컴퓨터 보급대수를 1000만대 수준으로 늘리고 고급 IT 전문 이력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의욕을 보였다.
그 와중에 김영삼 민자당 대통령 후보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공약에서 정보산업육성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보산업 육성기금을 설치하고 소프트웨어 등 정보처리관련 산업을 제조업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김 후보가 정권을 이어받은 1993년부터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이 본격 논의됐다. 하지만 체신부(1994년 정통부로 확대 개편 전), 재정경제원, 통상산업부, 교육부가 주관 부처가 되기 위해 경쟁을 벌이면서 법 제정은 늦어졌다. 1993년 극적으로 범부처 합의를 이뤄내고 국회에 발의했지만 정통부가 신설되며 법 제정 작업이 중지됐다. 이후 정통부가 주도해 다시 법 제정에 착수했고 1995년 8월 임시 국회를 통과하고 이듬해 1월 1일 발효됐다.
◇포스트 정보화시대를 위한 준비=IT산업은 이제 국가 경제를 이끄는 큰 축으로 부상했다. 시대 변화에 맞춰 정보화촉진기본법은 1999년, 2009년 대폭 수정돼 현재는 국가정보화기본법으로 존재한다. 당시 주무 부처였던 정통부는 2009년 정권이 바뀌면서 방송통신위원회,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교육부로 기능이 분산됐다. 이 법을 수행할 컨트롤타워가 현재는 부재한 상태다. 2013년 대한민국에는 새 정부가 출범한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고 세계 각국이 경쟁 체제에 돌입했다. 대한민국을 IT강국 반열에 올려놓은 정보화촉진기본법이 제정되던 때와는 시대가 변했다. 지금 상황에 맞는 IT 정책이 필요한 때다.
[표]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 과정
![유필계 당시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과장(현 LG유플러스 부사장)](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9/13/2132132132.jpg)
◆ 유필계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과장(현 LG유플러스 부사장)
“당시에는 `정보화`라는 개념조차도 낯설 때다. 체신부와 주변 연구원 학자들 정도만 뚜렷한 인식이 있었다.”
정보화촉진기본법을 제정할 때 처음부터 실무를 도맡았던 유필계 당시 정보통신정책 과장(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은 1990년대 초반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그는 “아직은 우리나라 국력이 약했던 시대라 일찍 치고 나가면 국민 생활 편익, 산업 경쟁력, 산업 진흥효과가 엄청날 거라는 생각을 IT 그룹 내에서 공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도 정보화 사회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초기 단계에 먼저 치고 나가 주도권을 쥐자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전 세계에 참고할 만한 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유 당시 과장은 “매일매일이 회의의 연속이었다”며 “학계·산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틀을 짰다”고 말했다. 정보화 개념을 정의하고 정보화를 위해 해야 할 목표를 정했다. 이를 위한 조직과 자금 규모를 확정하고 자금 조달 방안을 마련했다. 정보화추진위원회, 실무위원회,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을 신설했다. 정보 유통·소비가 늘어난다는 데 착안, 개인정보 보호 조항도 넣었다. 국가 권력이 개인정보 침해한 역사 때문에 이를 극도로 꺼리는 사회라는 것도 고려대상이 됐다.
이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난항이 있었다. “한 달 동안 집에 못 들어갔다, 응급실에 실려간 사람만 두 명”이라는 그의 회고를 들어 보면 장애물이 꽤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국가 전체적으로 IT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다. 각 부처 간 신산업을 유치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던 것도 법을 제정하는 시간이 늦어지게 만든 요인이다.
부처 간 이견이 조정되지 않아 1994년 초안은 경제기획원, 과학기술처, 체신부, 상공자원부 4개 부처가 공동 발의했다. 하지만 정통부 설립을 골자로 하는 김영삼 정부 정부조직개편과 맞물리면서 경제 차관·장관 회의를 통과하고 전체 차관회의·국무회의 상정 뒤 법제처 심의를 받던 도중 중단됐다.
유 당시 과장은 “또다시 협의를 해야 하는데 통상산업부와 업무 협의가 안 돼 총 스물 네 번을 찾아갔다”며 “결국 협의가 안 돼 국무총리실에서 중재를 했다”고 말했다. 산 넘어 산, 국회에서는 “정보화가 뭐냐” “돈이 왜 필요하냐” 심지어는 “용어 자체가 기분 나쁘다”는 말까지 나왔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법안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는 IT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이 급물살을 탔다. 한국통신 매각대금 중 30%를 기반으로 정보화촉진기금을 만들었다. 정통부 내에 정보화기획실이 생겨났다.
그는 “IT·소프트웨어 산업이 국가의 중추가 돼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며 “이제는 시대가 변한 만큼 당시 목표했던 산업 육성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바꾸어야 할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고민해볼 때”라고 말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